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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녀의 귀향살이 (2014-2018)

채식주의자인 영국 친구가 차린 음식에 눈이 번쩍

by 영국품절녀 2011. 5. 20.


저는 워낙 고기를 좋아하는 자칭 고기테리언이에요.  울 신랑을 만나  거의 한 달 동안 매일 저녁 밥을 먹으러 신랑 기숙사에 갔는데, 맨날 채소, 나물 등의 반찬만 있는 거에요. (울 신랑은 고기보다는 채소, 나물 류을 좋아해요) 그당시에는 음식도 할 줄 모르고 워낙 굶주렸던 터라 뭐든지 주는대로 잘 받아 먹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한인슈퍼에서 3인분 삼겹살을 사가지고 와서 저희가 처음으로 고기를 함께 먹게 되었지요. 신랑이 저의 먹는 모습과 속도를 보면서 했던 말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나네요.


신랑: 미안하다. 너가 그렇게까지 고기를 좋아하는 지 몰랐어.....(난처한 얼굴을 하며 할말을 잊은 듯이)
나:  (2인분을 혼자 뚝딱 해치우고 입맛을 다시며) 내가 고기를 좀 좋아해. ^^;

이렇게 저의 고기 사랑은 신랑의 통제로 인해 가끔씩 먹는 것으로 만족하며 살고 있지요. 전 항상 대형마켓을 가도 돼지, 소, 닭이 있는 곳을 한 번 둘러 본 답니다. 그래서 전 채식주의자들이 정말 이해가 안가는 사람들 중의 한 부류에요. 어떻게 고기 씹는 맛을 느끼지 않으면서 이 세상을 살아 갈까요?  영국에 오니, 이 곳은 채식주의자들을 위한 천국이에요. 대형 마켓을 가도, 레스토랑에 가도, 피자 하나를 골라도 Vegetarian을 위한 메뉴와 음식이 딱 구분이 되어 있더군요. 그리고 생각보다 제 주변에 많은 영국 사람들이 채식주의자라는 것도 이번에 알게 된 사실입니다. 인터넷 기사를 보니,  영국의 전체 인구 중 6% (2006년 기준) 가 채식주의자로 집계되고 있으며, 영국의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매 주 2,000명의 영국인들이 채식주의자가 되고 있다고 해요. 이런 식으로 계속 나간다면 2047년에 영국에는 채식주의자들만 존재하게 될 지도 모른다고 하니, 놀랄 만 하지요.

한 가지 더 알게 된 사실은  영국 채식주의자들은 광우병 파동을 계기로 엄청 증가했다는 것입니다. (그 소동으로 인해 현재 영국 소고기는 안전하다고 하니 걱정 마세요) 또한 그들은 개개인에 따라 먹는 음식 등이 조금씩 차이가 있다는 것도 알았어요.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채식주의자라 하면 붉은 고기와 생선을 먹지 않는 사람들을 가리키지요.

그런데 영국에서는 채식주의자의 증가와 함께 이들도 여러 분류로 나뉘어 진다고 해요. 예를 들어 죽은 동물(생선)의 어떤 부위도 먹지 않는 사람 (전통적인 채식주의자), 고기, 우유, 달걀까지 먹지 않는 사람 (엄격한 채식주의자), 고기를 먹지 않으려고 노력하나, 경우에 따라 먹는 사람 (Meat-avoider), 건강을 위해 고기를 덜 먹는 사람 (Meat-reducer), 환경을 위해 고기를 안 먹는 사람 (Green eater), 건강을 위해 생선은 먹는 사람 등으로 나뉘어 질 수 있어요. 이들에게는 Flexitarian-주로 채식을 하나, 경우에 따라서는 고기와 생선을 섭취하는 사람-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고 해요. 따라서 영국에서는 엄격한 채식주의자들의 증가라기 보다는 약간 변형된 채식주의자들의 증가로 보아야 한다고 합니다. 신랑의 같은 과 영국 친구는 키가 약 185cm정도에 균형 잡힌 근육질의 몸매에 얼굴까지 완전 훈남인데, 알고보니 엄격한 채식주의자였다고 해요. 신랑말이 원래는 채식주의자가 아니었는데, 다이어트를 하게 되면서 바뀐 것 같다고 했어요. 그 친구는 달걀도 먹지 않는다고 해요. 뭘 먹고 그렇게 멋진 몸을 유지하는 지 궁금할 뿐 입니다.

몇 달 전에 신랑 박사과정 미국인 친구와 영국인 여자친구가 저희 부부를 초대 했어요. 저희는 간단하게 할 수 있는 닭갈비를 해 갔지요. 그런데 아뿔싸, 당일 날 그의 여자친구가 채식주의자 라는 것을 알게 되었답니다. 그래도 뭐, 하는 수 없이 음식을 준비한 터라 가지고 가면서도 좀 미안했지요. 동석한 한국인 친구가 주먹밥을 만들어 와서 그나마 다행이었지요.

전 채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은 터라 채식주의자인 그녀가 도대체 무슨 음식을 만들어 줄까? 또, 영국 여자들이 요리를 잘 못하는 편이라 큰 기대 없이 갔습니다. 도착을 해서 인사를 나누고, '뭐 도와 줄것 없을까?' 해서 부엌으로 가자마자 전 그녀가 차린 음식에 그만 넋을 잃었어요. 그녀는 그리스 아빠와 영국 엄마에서 태어난 사람이라서 그런지, 음식 스타일이 그리스 풍이었어요. 또한 채식주의자 답게 몸을 무척이나 생각하는 사람인 것 같았어요.


제가 넋이 빠진 그녀의 음식들을 소개해 볼까요? 
각 종 허브와 올리브 오일로 버무린 감자와 롱그래인 쌀과 갈색 빛이 나는 콩으로 만든 영양식 잡곡밥이에요.
영국 사람들의 주식인 감자 요리는 어디가나 빠지지 않고 등장합니다. 역시 채식주의자이며 건강을 무척 생각하는 그녀답게 보통 영국인들이라면 감자에 버터, 크림을 먹는 데에 반해,  깔끔한 올리브 오일와 허브로 맛을 냈지요. 콩밥은 그녀가 '정말 영양식을 즐기는 구나'를 알려주는 메뉴였답니다. ^^




역시 그리스의 피가 흐르는 그녀는 샐러드 역시 그리스 스타일이네요. 다양한 채소와 올리브, 치즈가 각종 허브와 올리브 오일에 버물러져 있어요. 개인적으로 제가 제일 좋아하는 Greek Salad입니다. 특히 여기 들어간 치즈가 맛있었어요.



이 곳에 와서 정말 신기했던 세 가지 각기 다른 맛을 가진 소스들입니다. 세 가지가 콩과 같은 잡곡과 요거트, 허브 등으로 만든 것들이었어요. 이런 소스들은 그냥 아무거나 찍어서 먹어도 맛있고, 그냥 먹어도 질리지 않는 담백한 맛이 었어요.



빨간 칠리 고추는 그냥 먹으니 입 안이 좀 얼얼했지만, 워낙 매운 것을 잘 먹는 한국인으로서 덥석 베어서 맛있게 먹었습니다. 올리브는 말캉말캉하니 씹는 맛이 고소했습니다. 그 옆으로 보이는 구운 치즈에요. 이건 그리스에서 직접 가지고 왔다고 하면서 주었는데, 전 치즈를 구워서 먹는 것은 이 날 처음 알았네요. 다소 짜긴 했지만, 계속 손이 가요 손이 가~~ 마지막 하나 남은 것도 제 차지였습니다. 그리고 난이라는 빵 토스트해서 다른 것들과 함께 먹으니 그냥 빵보다 더 쫀득하니 좋더군요.



그녀는 채식주의자지만, 그렇지 않은 저희들을 위해 준비한 소고기 요리였어요. 소고기 요리도 완전 영양식으로 레드와인을 넣고 뭔가 요리를 한 것 같은데, 양념이 너무 약해 그냥 고기 맛으로 먹었지요. ㅎㅎ



저희가 만들어 온 닭요리는 그녀의 미국인 남자친구는 정말 좋아했어요. 같이 간 친구가 만들어간 주먹밥을 무척 좋아했지요. 

그녀의 음식 솜씨는 정말 최고였어요. 그러면서 저는 같이 온 친구에게 "이렇게 먹으면 채식주의자 되도 상관없겠다" 며 농담을 했지요. 메인 메뉴가 끝나고 디저트를 만들어 주는데, 역시 디저트도 다르더군요. 보통 영국 친구집에 초대를 받아 가면, 너무 부담되는 높은 칼로리의 케이크, 푸딩 등를 디저트로 먹어요.

그녀가 준비한 디저트는 머랭 위에 그리스 요거트와 라즈베리, 블루베리를 믹서에 갈아서 만든 요거트입니다. 그 위에 라즈베리와 블루베리로 장식을 하고, 꿀을 뿌렸어요. 머랭의 단 맛과 시큼한 요커트와 꿀이 더해져 입 안에서 스르륵~ 녹아 없어집니다. 단 맛과 시큼한 맛이 제대로 조화를 이룬 맛이라고나 할까요? 이 맘에 전 매료되어, 앞으로 저도 친구 초대 시 이걸로 디저트를 만들어 주어야 겠다는 생각에 그녀가 만드는 것을 잘 관찰하고 왔어요.

           

요거트를 못 먹는 친구에게는 초콜릿을 주는 센스쟁이 그녀~



너무나 건강식이고 담백, 고소했던 그녀의 음식을 맛 본 후에 저도 이렇게 영양 만점인 건강 식단을 먹어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지금까지 너무 고기만 밝혔던 제 자신을 반성하며, 저의 건강을 위해 육식과 채식을 조화롭게 균형을 맞추어야 겠다는 다짐을 한 날이기도 합니다. 저는 위의 분류에서 Meat-reducer에 가까워지려고요. ㅎㅎ 이렇게 포스팅을 하고 보니, 그녀의 깔끔하면서도 신선한 음식이 그립네요. 하여간에비만이 사회 문제로 심각한 영국에 육식보다는 채식을 하려는 사람들의 비율이 점점 증가한다고 하니 참으로 다행입니다. 오래간만에 영국 친구로부터 한번도 받아 보지 못한 영국 건강식 밥상을 받은 행운도 누리고,  채식주의 식단에 대한 저의 고정관념도 깨지게 되어서 참으로 기쁜 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