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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품절녀 & 남 in UK/유학생 남편 둔 아내의 일기

식성이 유별난 아내를 둔 유학생 남편의 고충

by 영국품절녀 2012. 6. 16.



오늘은 가볍게 영국에 사는 저희 부부가 겪고 있는 고충에 대해 한풀이를 해 볼까 합니다.

저는 음식을 하나도 할 줄 모르고 영국으로 유학을 왔습니다. 아빠는 그런 제가 무척 걱정이 되셨는지 짐가방에 햇반 약 40 ~ 50개 정도를 넣어주셨지요. 그리고는 유학 가기 몇 달 전부터는 저에게 엄마 요리하는 것 옆에서 보고 배우라고 성화셨지만, 저는 요리에 전혀 흥미가 없었으므로 이렇게 말하곤 했어요.

아빠, 걱정 마세요. 닥치면 다 하게 되니까요.... (어디서 나오는 자신감이었는지...)

 

드디어 영국에 와서는 갖고 온 햇반을 아껴서 먹으면서 정말 간신히 한달 정도를 지냈습니다. 결국 햇반은 바닥이 나고, 밥통도 없는 저는 그때부터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거나 초콜릿, 빵 등을 먹고 지냈요. 같이 사는 일본 친구가 자신의 밥통을 종종 빌려주어 밥을 해 먹기도 했지만요. 그렇게 저는 몸무게가 5Kg 가까이 빠지면서 정신적, 육체적으로 그렇게 힘든 나날을 지내고 있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요리를 무척 잘하는 한 한국인 남학생을 만난 거에요. 그가 바로 지금의 울 신랑되겠습니다. 전 울 신랑의 요리 솜씨를 듣고 "아싸, 이 오빠한테 좀 붙어서 밥 좀 얻어 먹어야겠다" 이렇게 생각하고 매일 저녁 그 오빠의 기숙사로 밥을 얻어 먹으러 갔습니다. 신랑은 그 때 저를 이렇게 기억하지요. "참 개념없다. 요리를 도와주는 것은 둘째치고, 설거지 한 번 안 하고, 밥만 먹고 자기 기숙사로 딱 가버리냐?." 저도 지금 생각해 보면, 제가 無개념이었던 것 같아요. 신랑은 처음에 제가 좋아서 저녁 식사를 차려 준 것이 아니라, 일단 자기 혼자 밥을 먹는 것이 심심했고 저와 동갑인 유학생 남동생 생각이 나서 그랬다고 하더군요. 아무튼 저에게 무척 중요한 을 해결해 준 이 사람과 저는 결국 결혼까지 하게 되었답니다.

 

신랑이 연애 때 차려 준 밥상~

 

                                                                           불고기 정식~

 

                                                               토마토 스파게티와 치킨 커리

 

                                                                            탕수육 밥

 

정말 울 신랑에게 항상 고마운 것은 "연애 전부터 지금까지 항상 맛있는 한국 음식을 저에게 해 준다는 겁니다." 사실 외식 비용이 많이 드는 영국에서 연애를 한 저희들은 거의 만나는 장소가 서로의 기숙사 혹은 주변 친구들의 집이었어요. 연애 기간 약 2년 6개월까지는 데이트때 마다 신랑이 맛있는 음식을 해줬습니다. 특히 기념일에는 특별한 음식도 해 주었고요. 결혼 한 후에는 제가 거의 요리를 전담하고 있습니다만, 종종 신랑과 함께 요리를 하거나, 매 주 한 두번 이상은 신랑의 맛있는 한국 음식을 먹지요.

 

그런데, 울 신랑이 저의 식성으로 인해 삶이 힘들다고 하네요. 제가 음식을 좋아하고 잘 먹긴 하지만, 전 항상 한국 음식만 먹기 원하고, 매일 새로운 음식이 먹고 싶습니다. 매일 새로운 반찬과 요리를 찾는 저 때문에 저희 엄마도 좀 힘들긴 하셨지요. 이에 반해, 울 신랑은 어떤 음식이든 정말 가리지 않고 잘 먹습니다. 매일 똑같은 반찬을 줘도 아무 말 안하고 먹고요. 매일 똑같은 내용의 샌드위치를 점심으로 몇 달간 싸줘도 군소리 한 마디 안하는 것이 신기할 정도에요.

 

저희 부부의 매일 똑같은 일상 대화가 이렇습니다.

아내: 신랑, 나 맛있는 음식이 먹고 싶어

남편: 또 뭐... 넌 맨날 뭐가 그렇게 먹고 싶냐?  그냥 밥, 국, 반찬 이렇게 먹으면 되지~~

아내: ..............

 

영국은 한국 시간보다 9시간 (현재는 써머타임으로 8시간) 늦기 때문에 잠자리에 들 시간에 저는 한국 블로거들이 발행한 새 글을 보게 됩니다. 특히 맛집 혹은 요리 블로거의 사진들을 볼 때면 맛있는 한국 음식을 좋아하는 저는 미치겠어요.

아내: 신랑, 이것 봐~~ 진짜 맛있겠지? 이것도  저것도...

(계속 음식 사진을 보면서 맛있겠다.. 먹고 싶다.. 이럽니다.)

신랑: (참다가) 야~~~ 넌 도대체 먹기 싫은 음식이 뭐냐?  뭐가 그리 다 먹고 싶냐~~

 

전에 대판 싸움이 난 적도 있어요. 갑자기 대뜸 자려고 누웠는데 신랑이 저에게 이러는 거에요.

나 너가 맨날 뭐 먹고 싶다. 그럴 때마다 너무 힘들어. 그만 좀 해~~

 

잠자리에 누워 이렇게 심각하게 신랑이 말을 하는데, 그만 눈물이 왈칵~ 났어요. 한편으로 경제적 상황이 좋지 않아 풍족하게 장을 보지 못하는 저희들의 형편이 이해는 되면서도, 먹는 것 가지고 그렇게 말하다니 너무 자존심도 상하고, 먹고 싶은 한국 음식도 제대로 못 먹는 이런 상황이 정말 저도 참기 힘들더군요.

 

                                           나에게 먹을 걸 줘... (출처: 구글 이미지)

 

원래 돈이 없으면 보기만 해도 먹고 싶어지는 것이 사람의 심리인 것 같아요. 제가 계속 "먹고 싶다"라는 말이 실제로 생리적인 배고픔도 있지만, 그 보다는 경제적으로 힘들고, 타지에서 생활하는 스트레스가 "감정의 배고픔"으로 크게 나타난 것 같습니다. (신기한게 한국에 가면 크게 먹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들더라고요.) 저도 모르게 눈물이 멈추지 않고 계속 흐르는 거에요. 결국 엉엉~ 소리까지 내면서 펑펑 울었습니다. 신랑은 저의 우는 모습에 적잖이 당황하면서 어쩔 줄 몰라하는 거에요. 저는 신랑이 던진 이 말이 영국에서 힘든 상황까지 오버랩되면서 지금까지 참고 있었던 무언가가 빵~ 터져버린 것이지요. 정말 그 당시 신랑과 그만 살고 한국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던 것 같아요.

 

지금도 여전히 전 "먹고 싶은 것"이 많은 아내 입니다. 옆에서 신랑은 제가 10개 먹고 싶다고 하면 자제시켜서 3~4개 정도 음식을 해 주기도 하고, 사 주기도 합니다. 울 신랑이 자주 하는 말이 있어요. "너가 먹고 싶다는 것 다 먹게 허락하면, 우리 집 거덜날 거야" 라고요. 이런 신랑도 제가 나중에 임신하게 되면, 먹고 싶은 것 다 먹게 해 준다고 하던데요. 앞으로 두고 봐야 겠습니다. 이처럼 참 다른 성향의 남녀가 만나서 서로 이해하고 산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것 같아요.

지금까지 점점 맞춰가는 우리 부부의 알콩달콩한 결혼 생활기였습니다. 즐거운 주말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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