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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녀의 귀향살이 (2014-2018)/남매맘으로 살아가기

임신부 특권, 임신 유세 한국에만 있나요?

by 영국품절녀 2014. 9. 29.

오늘은 출산 예정일 D-30으로, 딱 한달 남았습니다. 물론 출산은 예정일보다 더 빨라질수도, 늦어질수도 있겠지만요. 출산 예정일이 가까워오니 흥분되면서도 두렵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아무튼 자연분만으로 순산하도록 많은 응원 부탁드릴게요. ㅎㅎ

 

오늘은 제가 임신하기 전에 신랑이 저에게 종종 했던 말로 시작할게요.

 

는 임신 유세가 무척 심할 것 같아~

손 하나 까딱 안 하고... 나를 다 시키겠지... ㅎㅎ

 

저는 컨디션이 안 좋거나 아프면 아예 집안일을 놓아버리고 쉽니다. 아무래도 아이가 없었으니 신랑이 간단하게 집안일과 식사 준비를 하곤 했지요. 우습게도 신랑이 농담반 진담반으로 했던 말이 씨가 되어 본의 아니게 임신 초기부터 저의 임신 유세는 시작되었답니다. 저는 임신 6~7주부터 입덧으로 엄청 고생을 했어요. 특히 임신 초기 증상인지도 모르고 감기 몸살로 여기고 1월 중순부터 계속 아팠거든요. 그랬으니 한국(5월 중순)에 오기 전까지 아예 집안일은 물론이고 식사 준비까지 오로지 신랑의 몫이었지요.

 

(출처: Google Image)

 

솔직히 임신 전에는 드라마 혹은 지인들의 임신 유세 경험담을 보고 들으면서 약간 이해하기 어려웠어요.

 

나도 과연 저럴까?

내가 먹고 싶으면 사 먹으면 되지...

왜 신랑에게 사오라고 조를까?

 

하지만 제가 막상 임신을 하고나니 임신 초기에는 심한 입덧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신랑에게 부탁할 수 밖에 없더라고요. 하지만 그 이후부터는 '남들도 하니까 나도 해볼까?' 라는 식으로 임신 유세가 하고 싶어졌어요. 게다가 주변에서도 임신한 저에게 이 때 아니면 못한다라고 하면서 임신 유세를 떨라고 부추기더라고요

 

저: 우리 아기가 OO먹고 싶대...

신랑:  "너가 먹고 싶다고 그래... 왜 애 핑계를 대냐?"

 

신랑의 핀잔 이후로는 아이가 아닌 "내"가 먹고 싶어~ 이렇게 말하고는 임신 유세는 계속~~ 막달이 되면서 제가 먹고 싶어하는 음식을 먹으면, 뱃속에 아이가 강한 태동을 하는 것이 느껴지는 거에요.  그 사실을 안 이후로 신랑은 제가 먹고 싶다는 음식은 아기도 좋아하는 것 같다고 그 즉시 갖다 주려고 노력합니다. ㅎㅎ

 

이와 같은 임신 문화(?)를 가지고 있다보니, 임신 유세를 받아주지 않는 남편을 둔 아내들은 서운함이 폭발하고 그 휴유증이 아주 오래~ 가는 것을 봅니다. 주변에서 보면 일부 아줌마, 할머니들은 임신 기간 중 남편에 대한 섭섭함을 늘 이야기 하시거든요. 저희 시어머니께서도 임신했을 때 얼마나 갈비가 먹고 싶었는지... 그렇게 갈비를 사달라고 해도 안 사주더라 하시면서 종종 푸념을 하신답니다.  

 

 

(출처: Google Image)

 

그런데 제가 만난 영국인들과 임신/출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알게 된 것은 아내들이 남편에게 임신 유세를 부리는 일이 크게 없더라고요. 물론 제가 다수의 임산부들과 이야기를 나눈 것은 아니지만, 출산 경험이 있는 영국 할머니, 아줌마들로부터 임신, 출산에 대해 들었던 말씀 중에 임신 유세와 관련된 이야기는 한번도 없었거든요. 또한 저와 비슷한 또래의 영국인 친구가 임신을 했을 때에 임신 유세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는데 그런 것이 있는지 신기하다고 했어요. 임신/출산 카페에도 보면, 서양권 국가 출신의 남자와 결혼한 일부 여자들은 임신 유세가 전혀 통하지 않아 서운했다는 내용의 글들을 읽은 적이 있네요.

 

 

이런 "임신 유세" 문화가 한국에만 있는 것인지 갑자기 궁금해 집니다. 일부는 임신 유세라는 말 자체에 불쾌감을 가질지도 모르겠어요. 임신한 아내에게 남편이 가장 해서는 안 될 말이 이렇다네요.

 

임신한게 유세냐??

 

실제로 남자들은 절대 알지도 느끼지도 못할 정도로 임신 기간은 정말 힘이 듭니다. 물론 개인차는 있겠지만, 사람마다 임신 자체가 무척 고통스럽고요, 임신 기간 10개월 내내 뱃속에 있는 태아 걱정에.. 임신에 따른 다양한 증상들 및 호르몬 변화로 인해 심신은 만신창이가 됩니다. 거기다가 출산은 말할 것도 없지요. 남자들이 군대 이야기를 끊임없이 하는 것처럼 여자들도 출산담이 툭하면  튀어 나오는 것과 일맥상통하다고 볼 수 있겠네요. 그만큼 힘든 기억이 강하게 남기 때문이랍니다.

 

(출처: 이지데이)

 

제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임신 유세는 적당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불화가 생기면 안 되니까요. 임신부 아내는 유세가 아닌 애교 수준에서 이것 저것 부탁을 하고요, 이에 남편은 임신으로 힘든 아내의 기분을 맞춰 주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차라리 부정적인 뉘앙스가 풍기는 임신 유세보다는 "임신 애교"가 훨씬 적절한 표현일 것 같아요. 이제 저는 임신 애교를 부릴 날도 30일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ㅎㅎ

 

"임신 유세"가 왜 생겼을까 생각해 보니, 임신과 출산은 아내들만의 몫이 아님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예비 엄마는 10개월 내내 태아의 성장을 느끼지만, 예비 아빠는 초음파 사진으로밖에는 방법이 없으니까요. 아내들의 임신 유세는 아빠들도 뱃속에 있는 태아에게 끊임없이 관심을 가지라고 생긴 것은 아닐까요? 임신 유세가 아닌 임신 애교로~ 우리 적당히 남편에게 요구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