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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품절녀 & 남 in UK/영국 품절남 글은 여기에

목청 높여 안현수를 칭찬하는 영국 BBC 중계

by 영국품절녀 2014. 2. 16.

안녕하세요? 영국품절남입니다. 주말을 잘 보내고 계신지 모르겠네요. 저는 요즘 그저 소치 동계 올림픽 보는 낙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즉, 하루 종일 올림픽 중계를 보고 있다는 말이지요. 다행히 BBC에서는 영국 선수의 경기가 아니더라도, 주요 경기들을 선택해서 볼 수 있게 해 줘서 즐겁게 시청하고 있답니다.

 

아무래도 지난 런던 올림픽에 비해 동계 올림픽에 대해 영국인들이 갖는 관심은 낮은 편입니다. 어제 저와 종종 스포츠에 대해서 얘기하는 영국인 아저씨도 동계 올림픽 보단 현재 진행중인 럭비 경기 – 6 Nation's Cup – 에 관심이 있더군요. 지난 밴쿠버 올림픽까지 영국이 따낸 금메달 개수는 고작 9개, 은과 동메달을 합쳐도 22개 밖에 되지 않는군요. 하계 올림픽에서 따낸 금메달 수만 200개가 넘는 것에 비하면, 영국의 동계 스포츠에 대한 관심은 적어 보이긴 합니다. 또한 이번 겨울의 역대 최악의 홍수 때문인지 뉴스의 헤드라인은 스포츠 보다는 날씨 관련 뉴스가 대부분이네요.

 

어제 그나마 영국인들의 관심을 끈 경기는 바로 러시아와 미국의 아이스하키 경기였습니다. 양 강대국의 경기답게 한치의 앞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치열하더군요. 갑자기 경기 도중, 쇼트트랙 1000m 경기 결승전으로 화면을 바꾸어 주었습니다. 모두 아시다시피 신다운 선수와 안현수(빅토르 안: 이하 편의상 안선수라고 하겠습니다) 선수 등이 출전한 경기였지요. 그런데 영국인들의 스포츠 중계를 듣다 보니 꽤 재미있었습니다. 영국 선수가 출전하지 않는 경기였음에도 시작부터 큰 목소리로 흥분하며 중계를 하더군요.

 

경기가 시작되자 비교적 차분하게 경기 상황을 설명하던 BBC 중계진은 안선수가 초반부터 치고 나오자 흥분하기 시작합니다. 비교적 초반부터 안선수와 다른 러시아 선수가 1,2위로 선두권을 유지하자, 중계자 중 한 명은 아직 6바퀴나 남은 상황이라면서 놀라워하지요. 러시아 선수들이 승부를 거는 것 같다고 합니다. 이에 다른 해설자는 바로 안선수의 이력에 대해서 줄줄 읊어대는데...

 

 

 

밴쿠버에서는 부상 때문에 볼 수 없었지만, 토리노에서는 3개의 금메달을 땄던 선수입니다. 그 때는 한국 국적이었지만, 이제는 이 곳 경기장에서 러시아의 첫 쇼트트랙 금메달을 향해 달리고 있습니다. 보세요. 이 두 (러시안) 선수 사이에 어떤 다른 선수가 끼어들 수 없습니다.

 

경기 내내 쉬지도 않고 안선수를 칭찬하던 이 해설자는 마지막 바퀴를 도는 순간에는 흥분 지수가 더욱 높아졌고, 안선수를 비롯한 러시아 선수가 결승선을 통과하자...

 

 

 

1등 2등이 러시아 선수입니다. (One Two by Russia) … 안(선수)가 역사상 첫 쇼트트랙 금메달을 러시아에게 안깁니다… 어떤 (남자) 쇼트트랙 선수도 지금까지 올림픽에서 4개의 금메달을 딴 적이 없습니다. 아이스링크에 키스를 하는 안(선수) 기쁨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숨도 쉬지 않고 끊임없이 중계를 하던 해설자가 말을 멈추자, 조용히 있던 다른 중계자 역시도 흥분하면서... "부상 때문에 밴쿠버에는 나오지 못했지만, 한국에서 러시아로 국적을 바꾸어 1000m 금메달 리스트가 되었고, 러시아 관중들은 흥분의 열기에 휩싸여 있습니다."

 

 

 

 

 

물론 그 이후에도 두 해설자는 안선수의 행동 하나하나를 설명하면서 칭찬하기에 바빴지요. 어제 경기 중계를 보고 들으면서, 저는 개인적으로 즐거웠지만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당연히 저는 신다운 선수와 안현수 선수를 함께 응원했는데, BBC 중계 중 안선수의 선전에 흥분하는 두 영국인 해설자 때문에 마치 한국 중계를 보는 듯한 착각에 빠졌었습니다. 특히 안선수가 선두로 나올 때 들었던 러시아 관중들의 환호에 전율까지 일더군요. 그만큼 저도 경기에 몰입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러시아의 금메달 & 은메달, 한국의 신다운 선수는 4등한 것도 아쉬운데, 실격처리까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제가 응원하는 선수가 금메달을 따기는 했는데 그 선수의 유니폼과 손에 든 국기는 한국이 아닌 러시아입니다. 안선수가 러시아로 귀화하게 된 배경과 과정을 대략적이나마 알고는 있었지만, 다른 무대도 아닌 올림픽 경기여서 그런지 러시아 국기를 흔드는 안선수를 보고 아쉬움이 없었다면 거짓말이겠네요.

 

 

만약 안선수가 한국 유니폼을 입고 이번 올림픽 무대에 섰더라면 이 종목에서 금메달을 딸 수 있었을까요? 이젠 부질 없는 가정이긴 합니다. 그 결과도 알 수 없겠지요. 다만 제가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점은 안선수의 메달과는 관계없이, 한국 쇼트트랙 팀의 사기는 지금과 같이 침체되어 있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특히 스포츠 종목은 사기가 높아야 더 큰 힘이 나오는데 말입니다. 우리 대한민국 쇼트트랙 출전 선수들은 남은 경기까지 최선을 다하고, 좋은 결과로서 그 동안 노고를 보상받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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