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영국품절남입니다.
오늘은 제가 며칠전에 겪은 황당하지만 조금 아쉬운(?) 사건을 포스팅 해보려고 합니다.
제가 이번 여름 방학을 맞아해서 학교 기숙사 청소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습니다. 2년 전에도 한 적이 있지요. 켄트 대학에는 기숙사가 여러 곳이 있는데, 방학 때에는 다양한 용도로 사용됩니다. 회의나 컨퍼런스 등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위한 호텔 서비스 - 식사 제공 포함 - 부터 약 2 - 3주 동안의 단기 어학연수를 온 외국 학생들의 기숙사로도 이용되지요. 작년에는 런던 올림픽에 참가했던 독일 대표팀이 묶었다고도 하더군요.
일 자체는 그렇게 힘들지는 않습니다. 호텔 서비스처럼 화장실과 방을 간단히 정리하거나, 1주일에 한 번씩 이부자리 커버를 바꿔주는 정도이지요. 첫 2주 정도는 기존의 학생들이 나간 방과 화장실을 청소하느라 조금 힘들었지만, 그 이후는 꽤 할 만합니다. 시간당 임금도 7파운드 - 약 만 3천원 - 가 넘고, 점심시간 포함해서 4-6시간만 일하게 되므로 몸이 힘든 것도 별로 없습니다.
품절녀님이 청소하고 나서 찍은 기숙사 방
모든 직장인들이 그렇듯이 여기 아르바이트생들도 급여일이 다가오면 월급으로 무엇을 할 지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그런데 켄트대학의 급여 시스템이 조금 이상해서, 학생들이 짜증을 내곤 하지요. 보통 한 달 일한 급여는 월말에 지급되는 것이 정상인데, 이 곳은 다음 달 말일에 지급됩니다. 즉 6월 한 달 동안 일한 급여가 7월 말에 정산이 되어 지급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와 품절녀님은 6월 둘째 주부터 일을 하기 시작했는데, 이제서야 6월달 월급을 받았네요.
첫 급여일이었던 7월 31일 아침, 저는 학교에 있는 현금 지급기를 통해 월급이 얼마나 들어왔나 체크를 했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제 계산대로라면 한 £ 600 (110만원) - 세금도 떼야 하고, 중간에 학회 참석과 이런 저런 일로 결근을 했었기에 - 정도를 받아야 하는데.....
제 계좌에 찍한 금액은, 무려...
£2,889.38, 한화로 약 500만원이었던 것입니다.
고작 3주동안, 하루 6시간씩 밖에 일하지 않았는데, 무려 제 계좌에는 500만원이 들어 있었지요. 너무 놀라고 황당할 수 밖에 없었지요. 출근하자마자 같이 일하는 학생들은 서로 돈이 얼마 들어왔는지, 그 돈으로 뭐 할건지 등의 이야기를 나누는데, 저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이상하게도 오피스에는 제 급여 명세서만 없는 것이었습니다.
주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줄곧 든 생각은 "도대체 무슨 일일까??" 라는 생각이 끊이지 않더군요. "그냥 조용히, 입 다물고 있을까?"라는 나쁜 생각도 잠시 들더군요.
하지만 너무 이상하기도 하고 양심에 찔린 저는 점심시간에 담당 매니저에게 이질 직고하러 갔지요. 매니저도 듣더니 당황해서 - 당연히 그럴 수 밖에 없을 겁니다. 다른 학생들은 모두 £600-800 정도를 받는데, 저만 거의 £3000 에 가까운 급여를 받았으니까요. 매니저는 저 보고 당장 학교 급여 사무실(Payroll office)로 가라고 했습니다. "아~ 괜히 얘기했나?"라는 생각도 들기는 했지만, 일단 가서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그 곳에서 드디어 의문이 풀렸습니다. 제가 지난 학기에 학과에서 한 과목을 가르쳤습니다. 그 당시, 저의 신분이 시간 강사 - Assistance Lecturer - 였죠. 시간 당 약 £38 - 한화 약 7만 5천원 - 계약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대학의 급여 프로그램이 저를 청소 아르바이트생이 아닌 시간 강사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죠. 따라서 제 근무시간이 시간 당 7파운드가 아닌 38파운드로 계산되어 지급된 것이었습니다.
결국, 저는 담당 직원으로부터 본래의 받아야 할 급여 외에는 학교 계좌로 토해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저는 적어도 그 직원으로부터 "참~ 정직한 사람이구나, 바로 와서 알려주다니..." 정도의 칭찬은 듣고 싶었는데, 별 말도 안하더군요. '뭐.. 당연히 해야할 일이지만요.' 집에 오자마자 초과급여를 바로 반납했지요.
결국 £638.31 가 저의 진짜 급여입니다.
그 다음날 일하러 갔더니, 청소 직원들과 아르바이트 학생들 사이에서 저의 급여 해프닝을 두고 난리가 났습니다. 직원들은 - 보통 아주머니들 - "Rich Boy" 라고 절 부르고, 학생들은 오늘 저녁 회식 때, 저에게 한턱을 쏘라고 하더군요. 저는 심드렁 하게 딱 반나절만 "Rich"였다고 대꾸하고, 매니저에게 가서 자초지종을 설명했습니다.
저와 항상 파트너로 일하는 말레이시아 출신인 화교 친구의 말~
도대체 왜 그랬냐... 학교는 적어도 연말까지는 이 문제를 찾아내지 못할테고,
어쩌면 아예 걸리지 않을 수도 있었을텐데..
저보다도 오히려 그 친구가 훨씬 더 아쉬워 하더군요. ㅎㅎ 솔직히 그 돈이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일 것입니다. 한 푼이라도 아쉬울 때이니까요. 그 화교 친구 말대로, 그냥 입 다물고 있었다면 10월까지 약1000만원 이상의 돈이 제 통장에 쌓였겠지요. 하지만 마음은 상당히 불편했을 듯 합니다. "1000만원"은 당연히 저에게 큰 돈입니다만, 제 양심값은 그 보다 훨씬 더 비싸다고 믿고 싶네요. 설사 학교에서 초과 지급한 비용을 발견하지 못하더라도, 꽤 오랫동안 마음이 불편하고 신경쓰이지 않았을까 합니다. 일종의 부정한 돈이니까요.
이번 일은 일종의 해프닝이었습니다. 그래도 한 두시간이나마 "이 돈으로 무엇을 할까?" 라는 즐거운 상상을 해 봤으니 그것으로 만족할랍니다. ㅎㅎ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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