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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녀의 영국 귀양살이 seasno 1 (2010-2014)/영국인과 문화

차이를 인정하는 영국 학교의 우열반 제도

by 영국품절녀 2013. 4. 24.



한국인들은 우열반 제도에 상당히 민감합니다. 저 역시도 고등학교 2~3학년 때에 우열반으로 나뉘어 수능 주요 과목을 배운 적이 있었는데, 우반에 들어가지 못한 학생과 학부모들의 항의가 꽤 있었던 걸로 기억하지요. 그렇게 말이 많은 우열반 제도가 영국 학교에는 공/사립 불문하고, 아이들의 학업 능력에 따라 우열반을 정하여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랜 전통을 가진 영국의 체계적인 우열반 시스템을 간단하게 소개하겠습니다. 저는 영국의 한 사립 학교를 기준으로 설명하려고 합니다. 물론 학교마다 조금씩은 차이가 있겠지만, 전체적인 운영 방식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전제하고 참고만 하세요.

 

(출처: Telegraph.co.uk)

 

1. 차별이 아닌 차이를 인정하는 우열반


우열반 제도를 바라보는 기본적인 시각과 시선이 한국과 영국의 가장 큰 차이점이 아닐까 싶은데요, 개인마다 학업 능력, 성실성, 수업 태도 등 각기 다릅니다. 영국은 그것을 개인의 차이로 인정하고, 아이들의 능력에 맞게 비슷한 수준을 가진 학생들을 모아 놓고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영국은 교사들의 재량권이 상당히 커서 수업 준비 내용 및 과제 등도 반마다 다르게 적용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성적이 낮은 반 아이들을 무시해서 덜 가르치는 등 차별을 두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영국 학생들과 부모들은 차이에 따른 우열반 제도를 인정하고 이에 대한 반발심이 적은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차이는 곧 차별이다" 라는 생각이 저변에 깔려 있어, 우열반이 위화감을 조성한다고 하지요. 이런 이유로 부모도 학생들도 다들 반발이 심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부모와 학생들이 그렇게 느낄 수 밖에 없는 것이 학교와 교사들의 몫도 큰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의 학창 시절을 떠올려 보면, 선생님들은 우반과 열반에서의 수업 태도와 언행이 확실히 다릅니다. 학교와 선생님들부터 그렇게 차별적인 수업 태도와 학생들을 대우하니 당연히 차이가 차별로 느껴지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요? 이러니 교사들도 학생들도 열반은 공부를 포기한 반으로 아예 낙인시켜버리는 것 같습니다.

 

(출처: Telegraph.co.uk)

 

2. 과목 별 차등 교육


영국은 초등학교부터 한국의 중학교처럼 담임 선생님이 있어 기본적으로 반이 정해지기는 하지만, 과목 별 교사가 따로 있습니다. 그래서 일단 전교 일등부터 꼴찌까지 성적 순으로 반을 A,B,C.. 이렇게 정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일부 한국의 우열반과는 사뭇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일부 학교에서는 주요 과목인 영, 수와 같은 과목들만 우열반 제도를 시행하는 경향이 있지만, 영국에서는 과목마다 차등 교육이 시행됩니다. 그래서 과목마다 반을 이동해서 수업을 듣는다고 하네요.

 

예를 들어, T라는 학생이 전 과목을 종합하여 산정한 성적 순으로 1학년 A반에 들어갔지만, 수학 B반, 불어 C반 이처럼 과목 성적 별로 각기 다른 반에서 수업을 듣습니다. 따라서 1학년 A반 학생들이라 할지라도, 과목에 따라 A, B, C 등 반으로 나뉘어져 저마다 다른 교실에서 전 과목의 수업을 성적에 따라 듣게 되는 것이지요. 이해 되시겠지요?

 

제가 단순하게 듣기로는, 영국의 과목 별 우열반 제도의 운영이 꽤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전 과목의 성적이 다 좋아서 모든 과목을 A반에서 듣는 학생들도 있겠지만, 다수의 학생들은 자신의 학업 능력과 수준에 맞게 과목 별로 다른 반에서 수업을 들을 것입니다. 이러니 부모도 학생들도 별 항의가 없을 것 같습니다. 또한 상대적으로 교사들 역시도 수업 준비와 가르치는 방식을 아이들의 능력과 눈높이에 맞춰 수업할 수 있어 훨씬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싶고요. 학생들 역시도 비슷한 수준의 학생들과 배우니 모르는 부분도 비슷할 것이고, 알아듣지 못해 과목을 아예 포기하는 사태까지는 생기지 않을 것 같습니다. 물론 아예 공부에 대한 흥미가 없지 않고서는요.

 

만약 한국 공교육에 이 제도를 적용시킨다면, 교과의 수업 내용이 너무 어려워 이해가 되지 않아 과목을 포기하는 학생들의 수는 적어지지 않을까 싶어요. 굳이 학원과 같은 사교육에 덜 의존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 제 친구가 고등학교 교사인데, 한 반에 학생들의 학습 수준이 차이가 커서 수업을 하기가 몹시 힘들다고 했던 적이 있었어요. 중간 수준으로 수업을 하면, 상위권 학생들은 지루하다는 표정을 짓고, 하위권 학생들은 통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아예 수업 듣기를 포기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영국 우열반 제도에 따른 학부모의 항의가 없지는 않다고 합니다.

유럽, 아시아 등 외국인 출신 엄마들에게서 종종 나타난다고 하는데요.
영국인 남편을 둔 이탈리아 엄마는 프랑스에서 잠깐 거주한 적이 있어서 아들이 불어를 원어민처럼 한다고 해요. 그런데 아들이 불어 B반에 들어간 거에요. 못마땅한 엄마는 불어 교사에게 항의를 했어요.

우리 아들이 불어를 얼마나 잘하는데, 왜 B반이에요. 당장 A반에 넣어 주세요.

 

이에 교사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어머니, 학생이 물론 불어를 잘합니다. 듣고 말하기는 훌륭하지만, 쓰기와 읽기 수준이 상대적으로 떨어져요. 한 학기 동안 지켜 보고, 다음 학기에 성적 봐서 진급 시킬게요.

 

일단 그 엄마는 알겠다고 하고, 돌아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다음 학기에도 또 불어 B반~ 이번에 그 엄마는 바로 교장실로 찾아갔다고 해요. 불어 교사는 교장실에 불려 갔고, 거기에서 교사는 그 엄마에게 "당신 아들은 불어 A반으로 절대 갈 실력이 아니다." 라고 못박았다고 하네요.

교사의 말에 수긍하지 못하고 화가 난 이탈리아 엄마는 당장 아들을 다른 사립학교로 전학시켜버렸답니다. 이런 경우가 흔하지는 않지만, 일부 학부형들과 교사들과의 마찰은 종종 있다고 하네요. 아무래도 일부 부모들은 자녀들의 능력을 더 높게 평가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이에 반해 보통 영국 엄마들은 이렇게 말한다고 합니다.

우리 애는 (전체 성적으로 정해진) B반이지만,

그래도 수학과 물리는 A반이니까 괜찮아 ~~

 

이렇게 영국 엄마들은 속으로는 어떤 심정일지는 알 수 없으나, 겉으로는 웃으면서 몇 개 과목은 A반이니까 괜찮다고 말한다고 하네요. 실제로 속 마음까지 괜찮을지는 모르는 일이지요.

 

(출처: google.co.uk)

 


3. 결과 & 과정 함께 중시 - 우열반 이동 가능


영국 학교에서 우열반을 정할 때에는 몇 가지 규정이 있다고 합니다. 물론 가장 중요한 기준은 바로 시험 성적일 거에요. 하지만 결과와 함께 과정도 중시하는 영국 교육의 특징이 잘 나타나는데요, 이를테면 성적 차이가 별로 없는 A반 하위 등수들과 B반 상위 등수들의 경우에는, 단순히 시험 성적만으로 반을 정하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시험 성적 외 수업 태도, 과제 성실도, 노력 여하 등이 총체적으로 포함된다고 해요.

 

P 학생은 수업 태도가 다소 불량하지만 시험 성적이 높은데 비해, Q 학생은 성적은 P에 비해 조금 낮지만 수업 태도가 좋고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Q가 더 높은 반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또한 학기마다 아이들의 성적 및 노력 여하에 따라 반의 이동이 있다고 하네요.


 

참, 제가 가장 인상 깊게 들은 것이 있어요.  

영국 학교는 학년이 끝날 때 종업식에서 전 과목의 성적을 종합하여 우등상을 수여합니다. 각 학년의 반별로 딱 한 명 씩만 선정한다고 해요, 앞에서 말했듯이 성적 순으로 1학년 A반, B반, C반, D..E..이렇게 정해진다고 했잖아요. 즉 A반 1등, B반 1등, C반 1등.... 이렇게 성적 순으로 결정된 각 반의 1등만이 우등상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가장 높은 반인 A반 일등만을 우등생으로 인정하는 것이 아닌 B, C, D 각 반의 일등을 모두 똑같이 대우하고 있다고 할 수 있지요.

이런 우등상 학생 선정에 있어, 종종 일부 학부형들은 학교 측에 항의를 하기도 한다고 하는데요, A반 2등을 한 학생의 부모는 우리 애가 B반 1등 보다는 성적이 더 높은데도 불구하고, 우등상장을 받지 못하는 것이 화가 나기도 하고 아쉬운 거에요.

 

지금까지 영국 우열반의 장점에 대해서만 설명했지만, 당연히 단점들도 있을 거에요. 100% 완벽한 제도는 결코 없으니까요. 다만 제가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아이들의 학습 능력 및 태도와 노력 여하에 따라 차등 교육은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열반 방식이 우려되는 것은 아직 한국 사회는 차별과 차이를 인정하지 못하는 분위기이고, 학교 우열반 시스템과 교사들의 재량 역시 부모와 학생들이 신뢰하지 못하므로 시기 상조인 것 같습니다. 하루 빨리 한국의 공교육이 바로 설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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