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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녀의 영국 귀양살이 seasno 1 (2010-2014)/실시간 영국 소식

북한 사이트 명단과 조지 오웰 공산당 리스트

by 영국품절녀 2013. 4. 7.

안녕하세요? 영국품절남입니다. 오늘 제가 사는 캔터베리는 오랜만에 날씨가 맑았습니다. 날씨도 꽤 따뜻해 진 것 같습니다. 이제 봄이 오는 것 같더군요.

한국 뉴스를 보니, 해커조직인 Anonymous 가 북한의 "우리민족끼리" 라는 사이트를 해킹했고, 그곳에 가입한 사람들의 명단을 공개했더군요. Anonymous List 라고 해야 할까요? 이로 인해 어떤 네티즌들이 그 명단에 있는 사람들을 간첩 혹은 종북주의자로 규정해 요즘 말로 "신상털기"를 하고 있는 듯 합니다. 이러한 행동을 보면서 정보기관의 수고를 일부 네티즌들이 덜어주고 있는 것 같기도 하네요.

 

(출처: Joongang.com)

 

이러한 Anonymous 리스트 사건을 보니,

영국의 조지 오웰이 작성했던 Orwell's List 가 생각이 나더군요.

 

조지 오웰은 "동물농장"과 "1984"의 작가로서 한국에서도 꽤 유명합니다. 아마 현대 영국 작가 중에 가장 유명한 사람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위의 두 작품은 한 때 한국의 반공교재로서 필독서 중의 하나였습니다. 저도 초등학교 시절 동물농장과 1984를 거의 강제로 읽었던 것 같은데요. 사실 그 때는 너무 어려서 제대로 이해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특히 동물농장의 한국어 번역본은 이 책의 최초의 외국어 번역본이라는 사실을 아는 분은 많지 않으리라 생각됩니다. 1948년 미국 군정의 지원으로 국내에서 출간된 동물농장은, 이후 반공 교육이 사라진 1980년대 후반에 이르기까지 약 40여 년 간 반공소설의 정수로서 국내에서 결코 흔들리지 않은 위상을 지녀 왔던 것 같습니다.

 

(출처: Google Image)

 

스페인 내전까지 참전한 조지 오웰은 반공주의자는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신실한 사회주의자이자 애국자였지요. 그러나 그가 경험한 스탈린 독재 치하의 소련은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본질을 심각하게 왜곡하는 부패한 체제였습니다. 이러한 소련의 문제점을 꿰뚫어본 그는 붓끝을 통해 공산독재체제를 비판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전쟁이 채 마무리되기도 전에 집필에 들어가 종전 선언이 된 직후인 1945년 8월 그는 동물농장을 세상에 내 놓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 드리고자 하는 것은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이나 또 다른 반공소설인 1984가 아닙니다.

2003년 공개된 “조지 오웰 리스트 (Orwell’s List)"입니다.

그가 죽기 직전에 영국 정보국에 넘긴 38명의 명단에 들어 있는 인물들은, 영국 내 친소적인 정치가, 문학가, 배우, 학자 등 저명인사 등으로써, 당시 냉전시대가 막 시작되었던 때를 감안하면 결코 영국 정보국에서 채용해서는 안 될 인물들이었습니다.

 

이 인물들 가운데 한국에서도 꽤 유명한 사람이 있는데 바로 역사학자이자 국제정치 이론가인 E. H. Carr입니다. (이외에 한국인이 알 만한 사람으로 찰리 채플린이 있습니다.) 제 경험으로 볼 때, 영국 내에서 Carr는 역사학자보다는 현실주의 국제정치이론가로서 더욱 그 이름이 높은 사람인 것 같습니다. 그의 유명한 명제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 는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 정도는 들어봤을 정도이지요. 이 번뜩이는 말 한마디가 그를 국내에서 현대 역사가의 대부로써, 그의 저서 "역사란 무엇인가?" 는 필독서로 대접받게 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런데 조지 오웰의 입장에서 볼 때 친소적인 이 학자가 반공의 서슬이 퍼랬던 한국에서 역사학 최고의 이론가로서 인정 받아 왔다는 것이 새삼 흥미롭습니다.

 

(출처: Google Image)

 

실제로 Carr는 조지 오웰의 우려대로 냉전 시대가 시작되면서 더욱 노골적으로 공산주의를 찬양했습니다. 소련의 계획 경제 체제를 찬양하기도 했으며, 미국으로부터의 자금 지원을 영국 경제를 미국의 경제에 종속시키는 결과를 나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뒤늦게 맑스주의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그는 학자로서의 냉정함을 잃어버리긴 했지만, 그래도 괜찮은 저작들을 저술하지 했습니다. 냉전시대에 저술한 “양차대전 사이의 국제관계, 1919-1939 (International Relations Between the Two World Wars, 1919–1939)” 와 "역사는 무엇인가?" 는 국제정치 학도들과 역사학도들의 필독서가 되었으니까요.

 

그가 평생을 열렬한 공산주의자이자 혁명가적인 삶을 산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는 그의 조국 영국에서의 노동자 혁명이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 못내 아쉬웠던 모양입니다. 그가 죽기 직전에 "좌파는 멍청하고, 우파는 포악하다 (The left is foolish, the right is vicious)" 라고 남겼으니까요.

 

제가 사학과를 입학한 후, 1학년 1학기 "사학개론" 시험의 문제가 "E. H. Carr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논하라" 였습니다. 다른 과목의 문제는 생각도 나지 않는 것을 보면 그 만큼 이 인물의 임팩트가 컸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국제정치를 공부하면서 그의 저술이나 사상을 접해 보면 기대만큼 실망이 커져 왔던 것 같습니다. 비단 그가 무조건 적인 공산주의를 찬양해서라기 보다는 그의 학자로서 무비판적이고 편향적인 인식 때문인 것 같습니다. 물론 그의 저작이 볼만한 가치가 없다는 말은 절대 아닙니다. 다만, Carr가 한국에서 유난히 과대 평가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보게 됩니다.

 

조지 오웰은 투철하고 이상적인 사회주의자로서 동물농장과 1984를 남겼지만, 그가 남긴 리스트를 통해 보는 그는 사상가라기 보다는 애국자였습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그는 냉정한 현실주의자라고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한반도의 긴장이 고조된다는 뉴스와 북한 사이트 해킹 소식을 들으면서 신념과 애국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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