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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녀의 영국 귀양살이 seasno 1 (2010-2014)/영국인과 문화

한국 - 영국 아줌마의 대화 주제의 차이

by 영국품절녀 2013. 4. 19.

영국에 와서 지금까지 다양한 사교 모임, 식사 초대 및 자원봉사 등에서 만나는 영국 할머니, 아줌마들의 말을 들어보거나, 혹은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이나 영국이나 할 것 없이 한국 아줌마 및 할머니들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면, 대부분의 주제는 자식과 관련된 것 뿐 입니다. 아마도 그녀들의 온통 관심사는 자신 혹은 남편도 아닌 오로지 자식인가 봅니다.

 

한국에서 직장을 오래 다닌 지인들의 말을 들어보면, 전업맘은 말할 것도 없고 직장맘들 역시 대화의 90% 이상이 자식 이야기라고 하네요. 상대방이 미혼이어도, 아이가 없어도 전혀 상관하지 않고,물어보지도 않았는데도 그저 자식 이야기만 끊임없이 한다고 해요. 저는 아직 아이가 없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사교 모임을 했을 때 자녀 이야기만 줄기차게 해대는 일방 통행인 사람과는 전혀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 않습니다. 물론 제가 자녀의 안부를 묻거나 혹은 자녀 교육 등의 정보를 알기 위해 물어볼 경우에는 괜찮겠지만요, 말 그대로 자기 자식 관련 이야기를 제가 다 듣고 있어야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출처: Google Image)


 

일부 한국 엄마들의 대화 주제는 자식 교육 및 자랑이 으뜸입니다. 한국에서는 말할 것도 없이, 영국에서 만나는 일부 한국 분들 역시 처음 만난 한국인에게 자신의 자식이 어느 대학에 다니는지, 돈을 얼마나 버는지.. 등등 자식 자랑을 밑도 끝도 없이 하는 것을 종종 봅니다. 물론 친한 지인의 자녀가 공부를 잘해서 무슨 상을 탔거나 하는 등 그런 기쁜 일은 주변 사람들에게 알려서 축하해 주고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별로 친하지 않은 사람들은 물론이고, 아무리 친한 사람이라도 만날 때마다 대화 내용이 오로지 자식 자랑이라면 그런 사람과는 대화하는 것이 참 피곤할 것 같습니다.

 

이에 반해, 제가 만났던 영국 아줌마들과 이야기를 나눠보거나, 대화를 들어보면 자식 이야기는 거의 안 합니다. 굳이 상대방이 물어보면 대답할까 그 정도에요.

그렇다고 해서 자녀들의 자랑거리가 없는 것도 절대 아니에요. 제가 자원봉사를 하는 곳에서도 보면, 이번에 명문대에 입학 한 딸을 가진 아줌마가 있는데 절대 내색도 안 하고요, 주변에서 축하를 해 줘서 저는 알았을 정도네요. 또한 평상 시에도 자녀에 대해서는 별 말씀이 없습니다.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고요.

 

Ladies taking tea, 1902  (출처: Google Image)

 

참 흥미롭고 인상 깊었던 점은, 영국 아줌마(할머니)들은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합니다.

내가 요즘에 어떤 취미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이번 여행에서 무엇을 보고 느꼈는지, 헬스장에서 어떤 운동을 하고 있는지, 그 효과가 어떤지, 베이킹, 요리 및 퀼트(뜨개질) 등에 관해서 정보를 공유하기도 하고요, 음악회 및 뮤지컬을 본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든지, 이번에 바겐 세일 쇼핑 기간에 어떤 물건을 샀는데, 얼마나 좋았는지, BBC 프로그램 시청 소감, 자신들이 즐겨보는 운동 경기, 자원봉사 이야기 등등

 

쿨한(?) 영국 엄마들의 삶이 참 부럽습니다.

자식에게 올인하지 않고 자신들의 삶을 즐기는 것이요당연히 그들은 만나기만 하면 대화의 주제는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오겠지요. 그렇다고 해서 아이가 공부를 잘하고 못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입니다. 그분들 중에는 영국 최상 명문대에 합격한 자녀들도 있는가 하면, 대학을 가지 않고 직업 학교를 다니는 자녀들도 있습니다. 즉 자녀들이 공부를 잘 한다고 해서 자랑 할 필요도 없을 뿐더러, 설사 공부를 못한다고 해서 주눅이 들 필요도 없는 거에요.

이에 반해 한국에서는 공부 못하는 자녀를 둔 부모들은 어디가나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고 하네요, 요즘에는 돈이 많거나 혹은 공부를 잘하는 자녀를 가진 사람이 갑이라는 말까지 들었습니다.

 

이러니 영국 아줌마들과의 대화에서 한국 아줌마들은 얼마나 참여 할 수 있을까요? 아마도 꿀 먹은 벙어리로 앉아 있다가 돌아갈 것 같습니다. 어쩌면 아무도 묻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자식 자랑을 하는 사람들도 있을지 모르겠는데요. 상상만 해도 제가 부끄러워지네요.

 

물론 학부형 모임에서는 자식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겠지요. 그것은 서로 공통된 관심사이니까요. 특히 아이가 중요한 시험 혹은 대학 입시를 앞두고 있는 경우에는 더욱 더 그렇고요. 다만 모든 한국 엄마들이 다 위와 같은 부류는 아닌 것처럼, 영국 엄마들도 예외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밝힙니다.

 

하지만 사교 및 친교 모임에서 자신의 자식 이야기만을 주저리주저리 하는 행위는 상대방에 대한 어떠한 배려 및 매너도 찾아 볼 수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분은 그것을 일컬어 대화가 아닌 "공해"라는 표현을 쓰시더군요. 한편으로, 그녀들의 신세가 참 딱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누구 들으라고 그렇게 자식 얘기만 하는 건지', '자식 빼면 그렇게 할 말이 없는 것인지', '당신의 삶은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인지?' 그런데 참 아이러니한 것이 있다면요, 어떤 사람들은 처음에는 그렇게 자식 자랑을 해대다가, 나중에는 돈이 많이 든다, 삶이 힘들다 그런 신세 한탄으로 끝을 낸다는 것입니다.

 

한국 사회는 많은 엄마들이 바뀌어야 합니다. 비정상적이고 유난스러운 양육 및 돈으로만 하는 (학원 및 과외) 교육 방식은 요즘 엄마들이 하고 있는 잘못된 행태입니다. 이건 한국 아빠들에게도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자녀 교육을 아내에게만 맡기고 수수방관하고 있으니까요. 엄마들은 자신의 삶을 온통 아이들에게 저당잡혀 살고 있으니, 자녀들 말 밖에 할 수 없는 것이 어쩌면 당연합니다. 누구의 엄마로 사는 것이 잘못 되었다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개인으로서 보면 너무 안쓰러워요. 한국 엄마들의 대화 주제가 자식에게서 자신으로 바뀌는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간곡하게 바랄 뿐입니다.

 

본 글에 달린 댓글들을 보고 적어봅니다. 먼저 많은 분들의 댓글들을 접하고 난 뒤, 제가 간과한 부분과 다양한 견해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화가 많이 나신 "한국 엄마" 님 외 몇 분의 댓글을 보면서 저도 공감이 갔습니다. 한국 사회의 분위기와 지나친 교육 경쟁으로 인해 한국 엄마들이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살아야만 하는 슬픈 현실이라는 것이요. 직접 자녀를 키우시는 입장에서는 당연히 그런 말씀을 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저 스스로도 제 의견이 절대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저도 한국인 부모 아래서 그런 교육을 겪은 것이 사실이고 영국에서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것을 토대로 작성한 글입니다. 한국과 다른 문화와 사람들을 겪어보면서 느꼈던 부분이니 단순히 논란을 일으키려고 쓴 글 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그저 제가 만난 영국인들의 모습 - 그들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것도 아닙니다 - 을 통해 한번 쯤 우리 스스로도 되돌아 보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작성했던 것입니다. 앞으로도 많은 격려와 응원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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