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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품절녀 & 남 in UK/영국 품절남 글은 여기에

세월호가 우리 사회에 남긴 상처, 바로 불신

by 영국품절녀 2015. 4. 14.

안녕하세요? 품절남입니다.

서울의 주말은 꽤 온화했습니다. 품절녀님과 아이를 데리고 집에서 머지 않은 곳으로 벚꽃구경을 다녀왔습니다. 아직 돌도 지나지 않은 아기는 아직 왜 엄마 아빠가 자신을 이곳에 데리고 왔는지도 모른 채 유모차에서 잠만 자더군요. 그래도 모처럼 코에 바람을 쐬니 기분이 좋았던 모양입니다. 칭얼대지도 않고 얌전히 있더군요. 이번 주에는 비가 온다던데 예쁜 벚꽃을 보려면 이젠 내년을 기약해야겠네요.


세월호가 침몰한 지 꼬박 1년이 되어 갑니다. 몇 주전 교수 워크숍에 다녀왔습니다. 워크숍을 진행하는 강사님께서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광복 후 한국 사람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사건 3가지는 무엇일까요?" 대답을 기다릴 것도 없이 화면에는 "한국전쟁","IMF구제금융", 그리고 "세월호"가 띄워져 있었습니다. 한국전쟁은 직접 체험하지 않았지만, 나머지 두 사건은 저의 인격이 어느 정도 형성된 20대 이후 벌어진 사건이라 기억을 하고 있지요.

 

 

세월호 사건이 터져있을 때 저는 영국에 있었습니다. 배가 약간 기울어져 있다는 인터넷 뉴스를 보고 한 숨 자고 일어났는데, 뉴스를 다시 켜니 이거 큰일이더군요. 마침 기다리고 기다리던 임신에 절대 안정을 취해야 했던 품절녀님은 세월호 소식에 그만 블로그에서 일정기간 손을 놓았습니다. 지난 3년 이상, 매일 3~4시간을 투자해서 정성스럽게 글을 써온 사람인데, 컴퓨터만 켜면 보이는 세월호 소식에 좀처럼 글을 쓰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납니다.


저도 얼마 후 대학 총장의 명의로 이메일을 받았습니다. 수신인은 저뿐만이 아닌 "대학의 한국인 학생들"이었습니다. 총장은 이메일을 통해서 한국에서 벌어진 비극에 조의를 표하며, 혹시 이번 사건으로 가족 혹은 친구가 피해를 입은 사람이 있다면 대학의 상담실 등을 통해서 적극적으로 도와주겠다고 했습니다. 학생에 대한 대학 당국의 세심한 관리에 고마움을 느꼈지만, 동시에 세월호 사건이 주는 무거움을 다시 한 번 느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사건이 터지고 약 한 달 뒤 귀국을 하게 되었습니다. 귀국 한지 얼마 되지 않아 제 친할머니께서 돌아가셨습니다. 병원에서의 장례절차를 마치고 화장장으로 갔습니다. 그 곳에서 마침 세월호 사건 당시 사망한 여자 선생님의 화장이 진행 중이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우는 학생들을 보니 제 마음이 더욱 아프더군요. 처음으로 세월호 참사의 간접적인 피해자 분들과 같은 공간에 있었던 순간이었습니다.


워크숍 강사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더군요. 이 사건이 이 사회에 남긴 상처 중의 하나는 "불신" 이라고. 대중과 공권력 사이의 불신, 사람과 사람 사이의 불신이랍니다. 약 300명의 생명을 앗아간 – 그것도 죽지도 않을 수 있었던 기회가 분명히 있었던 – 참사임에도 공권력은 답답할 정도로 무능했습니다. 가족을 잃은 사람들은 여전히 고통을 받고 있지요. 아직까지 참사의 원인으로 제대로 밝혀진 것도 없어 보입니다.

 


끔찍한 참사를 겪은 사람의 반응은 대체로 둘 중 하나일 듯 합니다. 그 기억 때문에 끊임없이 고통을 받는 사람이 있겠지요. 다른 한 부류는 사건을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잊으려 할 것입니다. 기억하면 할수록 힘드니까요. 반응이야 어떻든 확실한 것은 그만큼 사회 속 인간관계에서의 긴장감은 높아질 것입니다.

 


워낙 대형 사건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팡! 팡!" 터지는 한국입니다. 그럼에도 이 사건은 쉽사리 잊혀지고 있지 않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참사 1년을 맞이해서 우리는 다시 한번 절대 잊고 싶은 과거와 대면해야 합니다. 여전히 우왕좌왕하고 있는 우리 사회가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여러분의 공감 은 큰 힘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