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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품절녀 & 남 in UK/영국 품절남 글은 여기에

불완전한 자들의 격려가 필요한 시대

by 영국품절녀 2015. 4. 17.

안녕하세요? 품절남입니다. 하늘조차 무거워 보이는 어제 하루였습니다. 무슨 글을 쓸까 고민을 하다가 UNIPEACE라는 대학생들이 만든 단체의 소식지에 기고했던 제 글을 올려볼까 합니다. 2013년 4월 창간된 대학연합 모임으로 다양한 사회 참여활동을 한다고 합니다. 계간지로 발행되는 UNIPEACE Journal의 이번 봄호의 주제는 "격려, 한 사람을 소중히" 습니다. 한 낱 사회의 부속품으로 여겨지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기획으로 보여서 저도 기꺼이 동참했지요. 공감이 바탕이 된 격려가 필요한 시대이니까요. 

 

불완전한 자들의 격려

언제부터일까? 우리의 대중매체에서 "힐링(Healing)" 이라는 말을 심심치 않게 듣게 되었다. 옛 과오로 대중의 기억 속에 잊혀진 연예인들은 대중매체에 출연하여 자신의 허물을 고백하고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시청자들에게 용서를 구한다. 그들은 이 과정 속에서 힐링, 즉 치유 받았다고 한다. 이들의 눈물이 거짓일지 진심일지는 오직 본인만이 알 것이다. 그들의 눈물이 연예계 복귀와 대중의 관심을 유도하기 위한 행위라는 것 정도는 우리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대중의 무관심이 그들의 생계를 위협한다는 것 정도는 인정하자. 적어도 대중의 관심과 용서는 그들에게는 치유이니까.

 

힐링이란 말은 사회관계망서비스(이하 SNS)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온라인 친구 및 이웃들은 자신의 일터에서 벗어난 어느 한 곳의 사진을 보여주며 글을 남긴다. "힐링이 되고 있노라고." 이렇듯 의학 혹은 종교에서나 자주 쓰일 법한 힐링이 우리 일상생활에서 유행어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그만큼 우리, 그리고 우리 사회가 병들어 있다는 반증이다. 부인할 수 없는 오늘날 우리사회의 슬픈 한 일면이다.

 

선 곳으로의 일탈과 커피 한잔이 잠깐의 치유는 될지언정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다시금 우리는 경쟁과 억압의 사회에 돌아와야 한다. 어릴 적 학교 교육에서부터 그런 삶을 강요당해 온 우리들이다. 취업문도 좁지만 취업해서도 상황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 건강한 육체와 정신을 가졌다는 것 자체가 오히려 더 어색해 보이는 사회, 그곳이 우리가 일상을 보내는 공간이다. 힐링에 대한 욕구는 바로 피폐해진 몸과 마음을 치유 받고자 하는 일종의 자기보호를 위한 방어기제이다. 살아남고자 하는 발버둥인 것이다.

 

 

그래서 격려가 필요하다. 우리는 왜 굳이 SNS에서, 일상대화에서 힐링을 외치겠는가? 나 자신의 병은 온전히 내 문제일 뿐인데. 바로 우리가 주변인들로부터 위로를 받고 싶어서이다. 나의 아픔을 남이 공유하고 공감하길 바란다는 의미이다. 우리가 듣고 싶은 것은 따뜻한 말 한마디, 즉 격려이다. 우리는 이런 격려를 통해 치유를 받고 에너지를 얻는다.

 

(출처: Google Image)

격려는 역사를 움직이는 원동력이기도 했다. 생각해 보라. 작은 실수조차 용납되지 않는 빡빡한 사회에서 역사의 진보를 기대할 수 있을까? 인류의 역사 속 '창조적 소수자'들은 수많은 역경과 고난을 극복한 이들이다. 이들의 겪었을 좌절과 멸시는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결국 이들은 이겨냈고 인류의 사상과 기술을 한 단계 도약시켰다. 우리는 이들만을 훌륭한 역사의 주역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들 곁에 있던 '격려하는 자'들 역시 결코 잊지 말자. 이들의 격려야말로 ‘창조적 소수자’들이 역사를 이끌어 나가게 한 숨은 힘이었다.

 

한 때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유행했다. 칭찬은 '좋은 일,' '잘한 일' 그리고 '훌륭한 일'에 대한 평가에나 쓰인다. 칭찬의 의미 자체를 폄하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우리가 모든 면에서 뛰어난 존재라면 굳이 칭찬이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자기만족은 있지 않겠는가? 하지만 불행하게도 우리는 불완전하고 감정적인 존재이다. 그렇기에 실수도 하고 상처도 주고받는다. 문명이 주는 편의를 인류의 위대함이라고 자만하지는 말자. 그 위대한 문명의 결과가 기껏 이 한 몸 건사하기조차 힘든 각박한 사회일 뿐이다. 역설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여전히 서로를 갈구하고 그 속에서 치유되기를 바란다. 불완전한 우리를 완전히 회복시켜주는 것, 바로 짧은 격려 한마디가 아닐까?

본 글은 UNIPEACE의 허락 하에 본 블로그에 개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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