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BBC에서는 성폭력 피해 아동들이 법정 진술을 포기하는 사례가 늘고 있어 아동(유아) 성범죄 사건들이 무기소 처분이 주어지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작년 한 해만 해도, 이만 삼천 건의 성범죄 사건 중에 단지 25% 정도만 기소되었다고 합니다. 그 이유로 피해 아동들이 법정에서 피해 사실과 관련하여 증언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기사에 따르면 약 50% 이상이 심각한 심신 미약 수준에 놓여 있다고 합니다. 특히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불면증, 거식증, 우울증, 패닉 상태 뿐 아니라 스스로의 몸을 학대하고 상처를 내는 분열 증상을 보이고 있다고 합니다. 이에 재판 관계자는 이미 벌어진 일이고, 이것 또한 아이들이 인정해야 할 일이라고 못 박고 있지만, 적어도 반 이상의 아이들이 재판 중에 묻는 질문의 뜻조차도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라고 하네요.
Royal Courts of Justice @ London
Supreme Court
영국 판사(Judge)들은 가발을 쓰지요.
(출처: Dan Kitwood/Getty Images)
이 기사를 읽으면서, 저는 제가 석사 시절 시내에 있는 지방 법정에 견학을 갔을 그 당시가 떠올랐습니다. 그 때 저는 한국과는 다른 영국의 법정이 신기하기도 해서 그저 흥미롭게 실제 재판 과정을 직접 관찰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어떤 방에 들어 갔다가 저는 소름끼치게 놀랐던 적이 있습니다.
그 재판은 "아동 성폭력 사건"이었어요. 피해 아이는 스크린 뒤에 있었으므로, 저는 그저 아이의 육성만 들을 수 있었지요. 처음에는 그 아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파악하지 못했어요. 왜냐하면 거의 말보다는 우는 소리가 대부분이었고요. 질문에 대한 대답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등 계속 똑같은 말만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꽤 오래 전 일이지만, 저는 지금도 그 때의 그 여자 아이의 울음 섞인 목소리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그 아이는 7~8살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으며, 엄마와 재혼한 새아빠로부터 끔찍하게 성폭행을 당했던 피해자입니다. 상상만 해도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습니다.
영국 잉글랜드에서는 9~16살 여학생들의 19%가 성적 학대를 당한 (당할 뻔) 적이 있거나, 유괴를 당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비록 79.9 %는 자신의 피해 사실을 털어놓았지만, 오직 약 33.3 % 만 경찰에 신고를 했다고 하네요. 물론 남학생들도 성폭력 피해를 당한 사실이 있긴 하지만, 여자들에 비해서는 꽤 비율이 낮습니다.
저는 그 때에 이런 생각이 들긴 했어요. 그 아이의 끔찍한 기억을 어떻게 재판을 통해 일일이 다 열거시키고, 묻고 또 묻는 것일까? 이것 또한 그 아이에게 또 한번 상처를 주는 행위가 아닐까? 계속되는 질문과 함께 아이의 울음이 가득 담긴 목소리를 듣고 있노라니 저는 그 아이의 고통과 새 아빠라는 짐승 같은 놈이 자꾸 떠올라 그 방에 오래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뒤로도 한 동안은 그 때의 아이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서 잊고 지냈는데, 이번 기사를 보고 다시 그 때의 기억이 새록새록하게 떠올랐네요.
기사에서 보니, 작년 Childline 자선 단체에서는 약 천건 이상의 상담 코너를 만들어 법정 출석을 두려워했던 피해 아동들과의 만남을 진행했다고 합니다. 아이들은 공개적으로 자신의 피해 사실을 알려야 하는 것이 무척 수치스러웠으며, 가장 큰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고 전했습니다. 성범죄 사건의 경우 보통 피해자가 증인이므로, 범죄 피해 사실에 대한 피해자의 증언이 가장 중요한 재판의 단서가 될 수 밖에 없지요. 하지만 법정에서 얼마나 효과적으로 아이들이 증언을 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며, 재판에서 행해지는 변호사의 대질심문이 무척 공격적이어서 아이들과의 소통조차 어려운 실정이라고 합니다.
다행히도 곧 새로운 아동 성범죄 기소와 관련한 검찰 지침서가 (New Crown Prosecution Service guidelines on prosecuting child sexual abuse cases) 발표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우선적으로 신용할 수 있는 증인 (credible witnesses)인 피해 어린이들이 법정 출석에 대한 스트레스를 최대한 덜 받게 하는 동시에 효과적으로 증언을 할 수 있는 방식과 환경을 만들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이를 테면, 만약 피해 아동의 나이가 3~4세라면, 재판 관련자들에게 아이 수준에 맞도록 쉽고 간결한 질문 방식을 주도록 아동 전문가에게 도움을 요청, 또한 얼마나 아이가 휴식을 취해야 하는지 등 아이에게 적합한 재판 환경을 제공할 것이라고 합니다. 또한 재판에서 선 녹음 증언 (pre-recorded evidence) 방식을 채택하여, 어린이뿐 아니라 청소년들 및 심신 취약자인 증인들에게도 적용할 것이라고 하네요. 앞으로 성범죄 기소의 새로운 가이드 라인을 통해, 대질심문 동안 피해자들이 스트레스를 덜 받고, 인권이 보장될 수 있는 재판이 되도록 다각적으로 고려할 것이라고 합니다.
(출처: BBC)
영국에서는 프라이버시를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공공의 질서를 더럽히는 범죄자들의 신원 및 얼굴은 즉각 공개해 버립니다.
우리나라에 도입이 시급합니다.
(저는 이들의 얼굴이 보기 싫어서 자체 모자이크 처리했음을 알려드립니다.)
우리나라는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 알아봤더니, 이미 우리는 성범죄 피해 아동을 위한 법적 장치가 만들어져 있더군요. 2010년 성폭력 범죄 사건 처리 지침에는 성범죄 피해 아동은 법정에 서지 않아도 되며, 진술 장면을 촬영한 영상 녹화물을 증거로 삼아 재판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친고제 폐지와 함께 성범죄에 대해서는 피해자의 고소 없이도 처벌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연합뉴스 2010.4.16)
우리나라가 영국보다 먼저 성폭력 피해 아동을 위한 맞춤형 법적 장치가 마련되었다고 볼 수 있겠네요. 영국이나 한국이나 성범죄 아동 피해건수가 매 년 속수무책으로 늘어나고 있는데요, 어린 아이들의 인생을 망치는 인간이기를 포기한 어른들은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또한 피해 아동들의 심신 회복을 위한 다각적인 정책이 가정, 학교, 사회에서 시행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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