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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품절녀 & 남 in UK/영국 품절남 글은 여기에

영국 박사학위 통과, 그토록 바라던 날이 왔는데

by 영국품절녀 2014. 5. 14.

안녕하세요? 품절남입니다.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집사람(영국 품절녀)의 몸 상태가 약간 좋아지긴 했습니다만 아직 컴퓨터를 오래 보며 글을 쓸 수 있을 정도는 아닙니다. 지난 달 세월호 사고 이후 너무 마음이 아프기도 해서 컴퓨터 앞에 앉는 것 조차 싫더군요. 하지만 다시 마음을 잡고 블로그에 신경을 써야 할 것 같습니다. 단, 당분간은 제가 이 블로그의 운영을 전적으로 맡아야 할 것 같네요. 가끔 품절녀 흉도 보면서요. ㅎㅎ

 

지난 금요일은 저의 영국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날이었습니다. 1월에 제출한 저의 박사논문을 놓고 2명의 심사위원이 논문의 질을 평가하는 자리였습니다. 심사위원들은 저의 논문을 읽고 박사학위 논문으로서의 적격한 지의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물론, 논문 내용 중 의문 나는 부분 혹은 잘못 논의 된 부분을 지적하고 이에 대한 저의 생각 및 입장을 묻는 자리였습니다. 2014년 5월 9일, 오전 10시, 평소에는 학과 교직원들의 회의 장소로 이용되는 공간에서 2명의 심사위원과 저는 마주 보고 앉아 박사 학위 과정의 마지막 관문인 "최종 구술 시험(Oral examination)"이  시작되었습니다.

 

참고로 영국 대학의 박사학위의 위한 최종 구술 시험의 정식 명칭은 라틴어인 "Viva Voce (대개 줄여서 Viva)" 라고 합니다. 미국에서는 PhD Dissertation(Thesis) Defense라고 하는데, 미국 유학생들 사이에서는 간단히 “디펜”이라고도 한다네요.

 

일단 결론부터 말씀 드리면 큰 문제 없이 합격이었습니다. 박사 학위 과정을 위해 이 곳 영국 캔터베리에 자리 잡은 지 꼬박 4년만의 일이었습니다. 저는 이 관문만 무사히 잘 넘기면 하늘을 날라갈 것 같이 기쁘고, 그 동안 집사람과 고생하면서 함께 겪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뇌리에 스쳐 지나갈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이 마지막 120분 때문에, 논문 제출 후에도 제 머릿속은 온통 그 생각뿐이었지요. 지난 3월 파리에 갔을 때에도 마찬가지였고요. 더군다나 지난 한 주 내내 신경성으로 의심되는 복통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화장실을 들락날락 했었습니다. 논문 작성하던 때보다 더 긴장했었나 봅니다.

 

바이바 당일 저희 부부의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Viva로 인해 받는 스트레스의 강도는 영어가 모국어인 영국 학생들에게도 꽤 높은 것 같습니다. 어떤 영국 학생은 구술 시험 전 지도교수를 졸라 3번이나 모의 Viva를 통해 실전을 준비할 정도였으니까요. 도서관에는 최종 구술 시험 준비를 위한 별도의 책까지 있지요. 비록 전공은 다르지만 제 친구는 몇 달 전 있었던 Viva에서 심사위원으로부터 전혀 연관성이 없는 질문들이 쏟아져 당황했었다고 합니다. 이 과정을 묵묵히 지켜보던 지도교수가 화낼 정도였다고 합니다.

심사위원들의 질문 성향을 알기 위해 그들의 최근 연구 동향도 파악해야 하기도 해요. 즉, 이 준비기간 동안 학생들은 자기 논문에 대한 냉정한 분석뿐만 아니라 심사위원들 – 특히 외부 심사위원 – 의 최근 논문도 읽어 볼 것을 권유 받기도 합니다. 사실 저는 대충 봤어요. 약 350쪽에 달하는 제 논문 보기에도 벅차더라고요.

 

운명의 시간, 깊은 숨 한 번 쉬고 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심사위원 두 명 모두 웃으면서 인사를 했고 저를 자리에 앉게 했습니다. 그런데 제 얼굴은 여전히 초조하고 긴장되어 보였나 봅니다.

그런데 그 때 들은 희망적인 한 마디.

 

(출처: Google Image)

 

긴장하지 마세요. 당신의 논문은 박사 학위 받기에 충분합니다. 다만 논의해 봐야 할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니까 편하게 질문에 대답해 주었으면 합니다.

 

그러면서 물도 한 컵 따라주었습니다.

보통 Viva는 90분 정도 소요되지만 저의 경우에는 약 2시간에 걸쳐서 진행되었습니다. 이론, 연구 방법론, 그리고 내용 중 의문 나는 점에 대해서 질문을 집중하더군요. 사실, 예상하지 못했던 질문들도 꽤 있었습니다. 특히 처음과 마지막 질문은 제가 전혀 준비하지 못했던 부분이었죠. 하지만 운이 따랐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 질문은 제가 박사과정 1년차 때 잠깐 훑어 보았던 학위 논문의 내용 중 일부였습니다. 3년도 더 된 글이었지만 급하니까 생각이 나더군요. 기억을 토대로 나름대로 차분하게 대답에 집중했습니다.

 

마지막 질문이 마치고, 심사위원들은 저에게 잠깐 밖에서 3~4분 정도 기다리라고 합니다. 영원할 것 같은 시간이 되리라 생각했지만 오히려 마음은 약간 편하더군요. 제가 2시간 동안 모든 질문에 대답을 잘했기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제가 아는 한도에서 최선을 다했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인 듯 합니다.

 

문이 다시 열리며 제가 다시 들어가자 두 심사위원은 저에게 말합니다.

Congratulation~~

 

그 순간 제가 한 행동은 90도 배꼽인사였습니다. 그 후 간단히 마무리 대화를 나누었고, 곧이어 심사위원 및 지도교수와 간단히 점심식사 시간을 가졌습니다. 제 지도교수는 기분이 좋은지 싱글벙글 이더군요. 그제서야 저도 약간 실감을 하긴 했지요.

 

지금까지 박사과정 중 중간중간 고비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학업으로 인한 압박감도 고비 때 마다 심했었지요. 그런데 사실 전 박사 학위과정을 최종 통과했다는 것 조차 어리둥절합니다. 그 동안 고생은 한다고 했는데도 저의 뇌리 속에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것은 아직은 아무것도 없네요.

 

 

 

제 논문 통과 소식이 학과 교수 및 박사과정 학생들에게도 전해졌나 봅니다. 어제(월요일) 학교 가는 길에 박사과정 친구를 만났는데, "Hi, Dr.X, Congratulation~" 이라고 하더군요. 그제서야 약간 실감이 났습니다. 그래도 아직은 본격적으로 실감이 나지는 않습니다. 집에 오면 집안일에 요리까지... 최종 시험을 마치고 온 그날 저녁에도 제가 설거지하고 집안 정리를 했으니까요. 물론 누가(?) 엄하게 시키니 안 할 수가 없었지요. 제대로 이 기분을 느끼려면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듯 합니다.

 

앞으로는 영국 품절남이 전하는 영국소식과 함께, 지난 4년간의 제 박사 과정을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물론 품절녀님의 글을 기대하시는 분들이 많으시겠지만, 아쉬운 대로 제 글도 너그럽게 읽어 주시고 관심도 가져주세요. 박사 과정 내내 저를 응원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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