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종종 블로그를 통해 "작년 이 맘쯤에는 내가 무엇을 했나?" 를 다시 회상하곤 합니다. 특히 특별한 기념일에는요. 저는 결혼 기념일을 1주년만 한국에서 보내고 쭈욱 영국에서 보내고 있습니다. 다른 분들과는 달리, 저희는 결혼 기념일이라고 해서 뭐 특별하지는 않아요. 신랑이 아직 학생이어서 선물은 생각도 못하고, 그저 둘이서 외식을 하면서 자축을 하고 있지요.
올해 저희 부부는 결혼 5주년을 맞게 되었습니다. 작년에는 제가 바쁜 울 신랑을 위해 레스토랑 예약 및 카드를 준비했었지요. 그러면서 "내년에는 5주년이니까 좀 기대해 볼게~" 이렇게 말했답니다. (작년 블로그를 찾아보니까요. ㅎㅎ) 저는 지난 주에 컨디션이 무척 안 좋았어요. 눈에는 다래끼가 나고, 입술마저 포진이 생겨서 아주 기분이 별로거든요. 일주일 내내 이른 아침에 일이 잡혀서 그랬는지 몸도 피곤하고, 거기다가 결혼 기념일에는 통 관심이 없어 보이는 신랑이 야속하기만 하고요. 그냥 모든 게 귀찮고 짜증이 났어요.
그러다가 결혼 기념일 하루 앞두고 신랑과 한판(?) 붙었습니다.
신랑 말로는 제가 일주일 전부터 끊임없이 "결혼 기념일" 이라는 말을 하루에 몇 번씩 했다고 합니다. 신랑은 저에게 "왜 이리 집요하냐?"고 하더군요. 자기는 너가 결혼 기념일이라는 말을 할 때마다 무척 부담스럽다면서요. 자기도 다 생각하고 있는데, 아직 당일도 아닌데 왜 이렇게 자기를 못 살게 하냐고요. 저 역시 내 상황이 짜증나고 심신이 약해지니까 신랑에게 결혼 기념일로 화풀이를 했나 봅니다. 아무튼 서로 조금씩 이해하자는 말로 상황은 간신히 종료되었습니다.
당일 날 (어제) 날씨는 오래 간만에 화사한 햇빛이 내리쬐는 맑은 날이었지만, 꽤 춥더라고요. 저는 그래도 '밖에서 커피도 마시고 둘이서 기분 좀 낼까' 라는 생각을 했지만, 저희 둘의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신랑도 일주일 내내 논문 작업에 몰두하다보니 그냥 쉬기로 하고, 하루 종일 둘이 잠만 잤습니다.
그렇게 푹~ 잠을 자고 일어나니 기분도 조금은 나아지고 배가 고프네요. 이미 날은 어두워졌고요. 신랑은 결혼 기념일 자축을 하자며 밖으로 나가자고 했습니다. 별 기대도 안하고 신랑을 따라서 레스토랑으로 향했지요. 신랑이 좋아하는 중국 부페 레스토랑이었습니다.
자리에 앉으니, 신랑이 저에게 빨간색 봉투를 전해 주면서~
우리 결혼 기념일을 축하해~
봉투에서 카드를 꺼내니, 알록달록한 핑크색 카드가 나오네요.
신랑은 카드의 문구와 뱃지가 너무 좋아서 이것을 골랐다고 합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오직 단 한 사람이고,
매일매일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더 더 사랑해~~
사랑스러운 부인에게
같이 있어줘서 고맙고, 사랑해줘서 고맙고,
너의 존재만으로 고마워.
사랑하는 남편이...
카드를 읽는 내내, 저의 눈에서는 눈물이 펑펑~ 흐르네요. 정말 순식간에 5년이라는 결혼 생활이 주마등처럼 스치면서, '유학 생활 내내 어려움도 많았지만, 우리는 잘 견디고 살았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는 저의 모습을 보고, 신랑은 당황하면서 왜 우냐고 하네요. ㅎㅎ 그리고는 저의 가슴에 Wonderful Wife라는 뱃지를 달아주면서 이렇게 말하는 거에요.
너는 남편이 인증한 "wonderful wife" 야~
남편이 직접 달아준 "훌륭한 아내" 뱃지
하루종일 잠만 잔 탓에 배가 고파진 우리 부부는 먹고 싶었던 중국 음식을 다 시켜서 먹었습니다.
베이징덕, 마파두부, 해산물 요리, 덤플링, 야채 볶음, 볶음밥, 치킨 수프, 소고기, 치킨 요리 등등
남들처럼 비싼 선물 교환 및 5주년 여행 등은 없었지만, 신랑의 마음이 담긴 카드와 뱃지를 받으니 기분이 너무 좋았습니다. 일주일 동안 징징거린 효과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이렇게 5주년 결혼 기념일은 막을 내렸습니다. 남편이 인증한 "훌륭한 아내" 뱃지를 받으니 얼마나 감동스러운지 몰라요. 비싼 선물보다 더없이 값집니다. 혹시 결혼 기념일 앞두고 계신 부부들은 서로에게 이런 가슴 뱃지를 달아주는 거 어떨까 하는데요? 꽤 괜찮은 이벤트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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