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국품절녀 & 남 in UK/이슈가 되는 발칙한 주제들

과한 대학 학점 퍼주기, 미국도 마찬가지

by 영국품절녀 2015. 1. 10.

안녕하세요? 영국품절남입니다. 지난 주였나요? 제가 상대평가와 절대평가 중 어느 방식이 옳을까에 대해서 포스팅한 적이 있습니다. 모 대학의 학내 문제에 제 경험을 되짚어 보며 작성한 글이었습니다. 그 글을 쓴 후, 그 대학의 학생인 분이 비밀 댓글로 현재 해당 대학의 학생으로서 겪는 어려움과 학내 문제의 본질에 대해서 설명해 줬습니다. 다시 한 번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대학에 입학기도 훨씬 전인 1993년, "부끄러운 A학점보다 정직한 B학점이 낫다 (박광철 著)" 라는 책이 출간된 적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주는 지혜와 조언을 여러 주제별로 모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약 20년이 지난 현재, 과연 제가 아이에게 이 말을 떳떳하게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학생 수1/3~1/2이 A학점을 받는 현실에서 제 아이에게만 B학점을 받으라고 할 수 있을지요. 물론, 아이가 먼저 "아빠, 난 열심히 공부했고, 떳떳하게 B학점을 받았어요"라고 먼저 말해 준다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알 수 없죠.

 

사실 각 대학교 학점규정에 교육부가 손을 데려는 이유는 학점 인플레이션이 심각하기 때문입니다. 이 조치는 대학 교육의 공신력과 관련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보이기는 합니다. 제가 한국에 돌아와 한 학기 가르쳐 본 결과, A학점에 무조건적으로 30%를 배정하는 것 자체가 문제인 것 같거든요. 그렇다고 학생이 7~8명 밖에 되지 않는데 상대평가 하라는 것도 교수나 학생 입장에서 모두 가혹하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학생수가 적을수록 교육의 질이 높아질 수 밖에 없기 때문에 학생들의 과제 및 시험 성적도 상향될 수 밖에 없겠지요.

 

(출처: Google Image)


그런데 학점의 인플레이션은 비단 우리나라 상황만은 아닙니다. 세계 학계를 이끌어가는 미국의 속칭 Ivy League 대학들의 학생 평균 학점은 거의 A-육박합니다. 아래 그림을 보면 이 범주에 프린스턴 대학 정도가 제외된다고 볼 수는 있습니다. 이 대학은 그 동안 A학점 받는 학생의 비율이 35%로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낮은 것이라고는 합니다. 하지만 경쟁대학의 학생들에 비해 대학원 진학 및 취업에 불이익을 받는다고 학생들의 반발이 꾸준히 이어져 와, 결국 작년에 폐지되었다고 합니다. 프린스턴대학 학생들의 평균 학점도 이제 곧 다른 Ivy League대학들과 별 차이가 없어지겠지요. 

 


 
(출처: The Economist )


위 그래프를 보면서 한 번 생각해 봐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어느 대학이든 학생들의 평균 학점이 꾸준히 증가해 온 것이지요. 하지만 요즘 학생들의 실력이 진정 C+급에서 A-급으로 증가했을까요? 저는 이 시기 동안 학생들의 실력이 어느 정도 상향평준화 되었다고는 생각합니다. 다양한 학습 기법이 소개되기도 했고, 훌륭한 교수 및 교재들도 많아졌기 때문이죠. 학생들의 공부 시간 자체가 길어지기도 했지요.


다만 위 그래프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기사의 제목 자체가 "A학점은 이제 더 이상 예전의 A가 아니다 (An 'A' Is Not What It Used To Be)" 일 정도이지요. 미국 유명 대학의 교육의 질 자체는 훌륭할 것 같습니다. 다만 이대로 간다면 그 대학에서 받는 학점까지 과연 신뢰할 수 있을까요?

 

학점 인플레이션을 꼬집은 카툰

A 학점이 평균이군요. ㅎㅎ

 

교육부가 각 대학의 학점까지 관리한다는 것 자체가 어색해 보이긴 합니다. 그것도 지원금을 미끼로 강요한다는 현실이 씁쓸하기까지 합니다만, 대학 학점의 인플레이션은 결국 대학 교육의 공신력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점에서 교육부의 의도 자체를 나쁘다고만 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학생수 및 교과목의 특성까지 무시해서는 안 될 듯 합니다. 제가 현재 가르치는 대학은 비교적 이를 유연하게 적용하고 있는 듯 해서 다행이네요. 학생 수가 9명 이하인 경우에는 절대평가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하니까요.


학생 수가 100명인 어떤 과목에, 모든 학생들이 뛰어난 학업 수행능력을 보여준다면 가르치는 입장에서 볼 때 어떨 것 같나요? 뿌듯함과 동시에 그만큼 괴로운 상황은 없을 것 같습니다. 상대평가 제도를 따라야 한다면 더욱 그렇겠지요. 다행히 제가 지난 학기 두 대학에서 가르쳐 본 결과, 절대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더군요. 그래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뛰기만 하는 대학 학점을 고려하면, 한국, 미국 할 것 없이 A, B, C 학점 제도에 대해 근본적으로 재검토해 봐야 할 시점이 온 것 같습니다. 저는 그나마 행복한 시기에 대학을 다녔다고 자조해 봅니다.

 

 공감하시면 그냥 가시지 말고 하트 콕~ 눌러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