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영국 품절남입니다.
제가 처음 졸업 가운을 입어 본 때는 유치원 졸업식인 것 같습니다. 물론 사진을 찍은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부모님 댁에 있는 저의 가장 오래된 옛날 앨범에는 그 당시의 사진이 있습니다. 그 후 졸업 가운을 또 다시 입게 된 때는 대학 졸업식입니다. 캠퍼스가 그리 예쁜 학교를 졸업한 것이 아니어서 좋은 그림이 나오지 않았다고 믿고는 싶네요. 하하
석사 과정부터 영국 대학에서 공부한 저는 세 번째 졸업 가운을 입을 기회가 생겼습니다. 그것도 품절녀님과 함께 할 수 있는 졸업식이었죠. 영국 대학에서 한국으로 날아온 팜플렛에는 졸업자 명단과 함께 졸업식 참석 여부를 묻는 별도의 용지가 들어있었습니다. 만약 참석할 예정이면 용지에 참석 여부를 기입해서 다시 학교로 보내면 되었습니다. 그 편지는 저를 고민에 빠뜨렸습니다. 그 당시에는 비용문제가 컸습니다.
가까운 일본이나 중국도 아니고, 단지 졸업식 때문에 영국을 다시 가야 한다는 것이 선뜻 용기가 나지 않더군요. 그래도 가고 싶은 마음도 적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졸업식 참석을 이미 한 번 연기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같은 학과 1년 늦게 시작한 품절녀님과 같이 행사에 참석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며칠 동안 둘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다가 결국 졸업식 참석을 포기하기로 했습니다.
(출처: Google Image)
브리스톨 대학교 졸업식이 열리는 법대
(출처: Google Image)
그런데 조금 아쉽긴 했습니다. 석사 과정을 마친 이 학교의 강당이 무척 멋있거든요. 이 곳에서 치뤄진 졸업식을 참석하고 온 친구는 큰 자부심이 느껴졌다고 했습니다.
드디어 저의 네 번째 졸업 가운을 입을 시기가 되었습니다. 제가 박사과정을 무사히 마치고 졸업식에 참석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여지 없이 국제 우편을 통해 참석 여부를 물어 보더군요. 마침 이번 졸업식 때에는 제가 박사과정 첫 발을 내디뎠을 때 저를 붙잡고 – 의아할 정도로 오지랖 넓은 – 훈계(?)를 해 댔던 벨기에 친구 역시 졸업식에 참석한다고 연락이 와서 무척 기뻤지요. 현재 그 친구는 그의 고국에서 정치인으로서 맹렬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또 다시 졸업식을 연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큰 아이가 태어나는 시점과 교묘하게 겹쳤기 때문이지요. 저는 이 내용을 졸업식 – 아~ 졸업식이라는 말보다는 학위수여식이 더 올바른 표현일 것 같습니다만 편의상 졸업식이라고 할게요 – 행사 담당자에게 보냈지요. 담당자는 축하한다면 그 다음에 있을 졸업식 참석자 명단에 제 이름을 넣어둔다고 했습니다.
드디어 제 마지막이 될 졸업식 참석을 위해 8개월이 된 아미와 함께 영국 여행을 준비하던 중에 부모님을 찾아 뵈었습니다. 아버지께서 하시는 말씀이 "졸업가운은 안 살거냐?" 며 대학에 들어가면 가운이 필요할 것이라고 하더군요. 저도 고민을 하긴 했습니다만 비용도 있고, 무엇보다 아기 짐이 이미 넘치는데 거기에 가운까지 들고 여행을 다닐 엄두가 안 나더군요.
(출처: Kent University)
제가 참석한 졸업식에서 대학 교수들이 졸업 가운입니다.
모자들이 좀 특이하지요?
그리고 저는 믿는 구석이 있었습니다. 제 친구가 해 준 한마디.
"이대 앞에 가면 전 세계 대학 졸업가운을 똑같이 만들어 준다"
이 한마디에 큰 힘을 얻었지요. 솜씨 좋은 한국 사람이 좋은 재질로 만든 졸업 가운이 훨씬 나을 것이라는 이 말에 저는 안심하고 다녀왔지요.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 강사 생활하느라 바쁘다 보니 졸업가운 생각은 지워졌습니다.
그런데 막상 학교에 들어가 졸업식에 참석해야 하니 졸업가운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들어간 곳은 학교 주요 행사인 입학식과 졸업식에는 교원 전체가 의무적으로 가운을 입고 참석해야 했습니다. 학교 깃발을 든 기수가 앞서가 그 뒤로 총장님, 보직 교수님들 이하 모든 교수님들이 가운을 입고 입장을 합니다.
켄트 대학 졸업식이 열리던 날~
밖에서 총장님 이하 교수들이 졸업 가운을 입고 대기 중이에요.
졸업한 대학들이 다르니 가운도 각양각색이지요.
저는 입학식 때 신임교원으로 소개는 되었지만 가운을 입을 필요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별로 졸업 가운을 의식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여름 졸업식을 앞두고 학교에서 가운을 입고 참석하라는 통지를 받고 정신이 번쩍 났습니다. 그래서 부랴부랴 그 "이대" 앞의 제복사에 전화를 했습니다. 그것도 졸업식 열흘 앞두고요.
문제는 한창 졸업식 시즌인 그 때 새로 주문을 받아 만들기는 곤란하다는 데에 있었습니다. 다만 거기서는 방문하여 비슷한 것을 찾아보자고 권유하더군요. 항상 미리미리 준비해야 하는데 늦다 보니 꼭 이렇게 되더군요.
아~ 다행히 상당히 비슷한 것이 있었습니다. 영국 대학 박사과정 졸업생들의 모자로 유명한 베레모도 준비되어 있더군요. 정말 천만다행이었습니다. 표정을 보니 그쪽에서도 다행이라고 느끼는 것 같았습니다. 샘플로 만들어 놓은 것이었는데 빌려가는 사람이 없었다더군요. 간혹 영국에서 학위 하신 분들이 옷을 맞추기는 하는데, 그 옷을 빌려가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서로 상부상조 한 것 같네요.
현재 제가 몸 담고 있는 대학의 졸업식 당일이 되었습니다. 가운을 입고 대기실에 있다 보니 여자 교수님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네요. 아무래도 영국 졸업모가 특이해서 그런가 봅니다.
(출처: Kent University)
제가 입었던 졸업식 가운입니다.
아~ 다시 졸업 시즌이 되었습니다. 졸업 가운을 어떡해야 할까요? 학기 중에 맞춘다는 것을 또 깜빡 해 버렸습니다. 그냥 지난 학기 때 빌렸던 가운을 다시 빌려야 할 것 같습니다. 적어도 1년에 세 번은 입는데 사야 할 때가 온 것 같기도 하네요. 차라리 옛날 중세 대학처럼 교수들도 가운입고 강의를 하면 비싼 돈 들여 가운을 사도 아깝지 않을 것 같은데 말이지요. 계절 별로 날씨가 극변하는 한국에서는 적합하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재미있는 상상을 한 번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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