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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녀의 영국 귀양살이 seasno 1 (2010-2014)/영국인과 문화

영국인 교수가 한국 음식 먹지 말라고 한 이유

by 영국품절녀 2012. 12. 18.

안녕하세요?

영국품절남입니다.


지난 번에 말씀 드렸듯이 지난 주에 논문 마지막 챕터에 대한 발표가 대학원 세미나 시간에 있었습니다. 지난 3년 동안 약 5회에 걸쳐서 지도 교수를 포함해서 4~5명의 교수와 15명의 박사과정 학생들 앞에서 제 논문 주제를 발표하는 시간입니다. 지금까지는 비교적 좋은 평가를 받아 왔었죠. 그런데 마지막 챕터 발표를 앞두고는 무척 하기가 싫더군요. 특히 지도 교수를 제외하고는 제 주제에 대해 잘 알 지도 못하는 박사과정 신입생들 앞에서 발표를 해야하는 상황이 되어버리자 더욱 발표하기 싫었던 것 같습니다.

 

제 스스로 발표를 조금 준비하면서 어렴풋이 예상한 것은, 내용 자체보다는 이론에 보다 질문이 많지 않을까였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학생들로부터의 질문들은 모두 내용에 관한 것은 하나도 없고 이론에 관한 질문뿐 이었습니다. 작년에 말했던 내용을 다시 반복해서 그런 것도 있었지만, 박사과정 1년차 들의 질문 역시 – 제 전공과 관련 없는 지라 – 겉돌기 일수였죠. 그래서 좀 성의 없이 대꾸하고 알았다고만 해버렸습니다. 제 스스로도 빨리 끝나기만 바라던 발표는 처음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러고 나니 교수가 너무 불성실하게 대답했다면서 핀잔을 주더군요.

앞으로 제 주제를 모르는 새로운 사람들에게 설명을 해야할 기회가 많을 텐데요, 그때마다 이미 몇 번 말했다고 해서 불성실하게 반응해서는 안 되지 않을까요? 

 

그런데 발표를 하기 싫었던 것도 있었지만, 컨디션도 그렇게 좋지는 않았습니다. 바로 음식 때문입니다. 발표 이틀 전 영국인 교수를 만나 미리 발표에 관한 내용을 논의했는데, 지나가는 말로 그러시더군요.

발표하는 날은 양파나 마늘이 들어간 한국 음식은 되도록 안 먹는 것이 어때?

난 괜찮은데 발표자의 강한 음식 냄새는 관중들에게 약간 거부감을 줄 수도 있어.

 

                                                        나 한국 음식 먹었어~~~~ (출처: 구글 이미지)

 

한국 음식을 좋아하는 영국인 교수지만, 그 날만큼은 한국음식 보다는 냄새가 없는 빵과 우유를 아침으로 권유하더군요. 사실 한국 음식을 많이 먹으면 주변 외국인들이 알아차릴 정도로 냄새가 심하게 나는 것 같습니다. 한국 유학생이 저희 집에서 저녁을 먹고 버스에서 외국인 친구를 만났는데, 보자마자  "너 한국음식 먹었지?" 하더랍니다. 특히 자극적인 한국 음식을 먹으면  냄새가 더 많이 나는가 봅니다.  저도 일리 있는 지적이라 생각해서 그렇게 했는데, 이게 문제였던 것입니다.

 

최근 저는 아침마다 꼬박꼬박 밥과 국을 먹었습니다. 더군다나 런던에서 사온 오징어 젓갈도 반찬으로 즐겨 먹었죠. 그런데 딱 하루 아침일 뿐이지만 맛 없는 빵과 우유만 먹으니 – 그것도 평소보다 일찍 - 입맛도 살지 않고 배에서도 반응이 썩 좋지 않더군요. 군대 다녀오신 분들은 기억나실 지 모르겠지만, 일주일에 한 두 번씩 아침으로 나온 햄버거를 먹고 난 이후의 뱃속 느낌입니다. 항상 막사의 화장실이 북적북적 하지 않았었나요? 하여간 딱 그 느낌이었습니다.

 

하기도 싫은 발표에, 속까지 편하지 않으니 최고여도 시원찮을 판에 최악의 발표가 되어버리고 말았죠. 물론 음식은 핑계이기는 합니다. 하루 빵 먹었다고 속이 그렇게 되었다기 보다는 그 당시 컨디션 자체가 좋지 않았는데, 빵이 들어가다 보니 더욱 악화 된 것일 수도 있겠지요. 발표를 하고 난 다음에는 "음식이라도 내가 먹고 싶은 것 충분히 먹고 했으면 덜 억울했겠다"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비교 대상이 되는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평소 된장찌개와 김치를 먹던 한국 축구선수들에게 중요한 경기 앞두고 파스타 먹고 경기하라는 것은 말이 안되잖아요?

 

발표는 조금 엉망이 되긴 했지만, 그래도 생각했던 것만큼 욕먹지는 않았습니다. 내용 덕분에 지도교수들로부터 생각보다 좋은 피드백을 받아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이번 발표를 마치고 두 가지를 깨달았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라도 최선을 다해서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큰 일 앞두고 "먹는 것" 때문에 스트레스 받지 말자는 것입니다. 괜히 흘려도 될 지도교수의 말을 들었다가 스스로 기분만 나빠졌으니 말이지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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