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살면서 깜짝 놀란 일 중에 하나가 바로 이혼 및 재혼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거에요. 한국도 이혼과 재혼률이 꽤 높다고 하긴 하지만, 그래도 쉬쉬하는 분위기가 아직은 있어서 대놓고 밝히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곳에서는 제 주변만 봐도 경력들이 화려한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성별, 나이, 직업에 관계 없이요. 영국에서는 10명 중 한 명이 5년 내에 이혼을 한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니까요.
이혼률이 높은 영국의 분위기라서 그런지, 재산 분할 이슈가 커플들에게는 큰 문제일 수밖에 없나 봅니다. 연구 조사에 따르면 (Guardian, 2009), 이혼한 여자 일곱 명 중 한 명은 결혼 시 재력이 상당히 중요한 조건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혼이라는 자체가 심신을 멍들게 할 뿐아니라, 경제적 지출이 상당하기 때문일 거에요. 이런 이유로 영국에서는 혼전 계약서를 작성하는 커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특히 이혼을 한번 이상 경험한 여자들 중에는 혼전 계약서를 작성하는 경향이 크게 나타나는데요. 이혼 경험이 있는 여자들 중에 56% 이상은 재혼 시 반드시 혼전 계약서 작성을 고려한다고 답변을 했답니다.
결혼을 하면, 돈 이외에도 서로 가지고 오는 것들이 참 많지요.
(출처: http://www.divorcecollaborative.com)
분명하게도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것입니다.
자신이 힘들게 번 재산 혹은 유산을
(혹시나 미래에 남이 될) 배우자로부터 지키고 싶어서
사실 저는 혼전 계약서라고 하면 재산이 상당히 많은 부유층 혹은 연예인들 사이에서나 존재하는 일인 줄 알았답니다. 그런데 꼭 그렇지만은 않나 봅니다. 물론 영국에서는 혼전 계약서 작성이 의무 혹은 강제적이지는 않습니다만, 게이 커플과 같이 동성간에 인정되는 혼인 관계 (civil partnership) 나 일반 커플들의 경우에도 혼전 계약서를 쓴다고 합니다.
(출처: 구글 이미지)
참고로 혼전 계약서 (prenuptial agreements) 는 이혼 시 재산 분할에 관한 내용을 합의하는 계약서입니다. 예를 들면, 부동산과 재산의 분할과 함께 위자료 등이 자세하게 작성되는 것이지요.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혼전 계약서 작성이 강제적이지는 않지만, 일단 작성이 되고 나면 법적으로 효력을 가지게 되므로, 나중에 이혼 시 법정에서 재산 분할을 결정하는데 큰 영향을 끼친다고 합니다.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요.
- (결혼으로 인해 직장 혹은 학업을 그만두어야 할 경우) 경제적인 보장과 자녀 양육 책임
- 전 배우자와의 자녀 혹은 나이 든 부모들의 부양
- 유산 및 재력 (사업체 등)
- 배우자의 빚
(Source: http://www.divorcecollaborative.com)
제가 최근에 주변을 통해 들은 "혼전 계약서 작성하는 영국인 커플" 사연 입니다.
영국 아줌마는 재혼을 하면서 (현재) 남편과 혼전 계약서를 작성했다고 합니다. 게다가 곧 자신의 아들을 결혼시킬 예정인데, 아들 커플에게도 혼전 계약서를 쓰도록 할 것이라고 했다는데요, 그 이유는 바로 아들의 재산을 지키려는 것이지요. 그 아줌마는 아들에게 집을 사줬나 봅니다. 그 분의 말로는 "요즘 어린 여자들이 집 있는 남자들을 찾는다" 하네요. 영국 역시 경제 불황으로 인해 집을 마련하는 연령대가 점점 늦춰지고 있으며, 과거에 비해 집 장만하는 일이 쉽지 않거든요.
따라서 영국 역시 여자들이 안정적인 가정 생활을 위해 집이 있는 남자들을 찾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집이 있는 남자 입장에서는 혹시라도 나중에 이혼을 하게 되면, 재산 분할 문제가 골치 아프니 아예 처음부터 혼전 계약서를 통해 원래 가지고 있던 재산을 보호하려는 것입니다.
이런 혼전 계약서 작성이 영국인 커플들 사이에서 흔한 일은 아니지만, 이처럼 혼전 계약서를 작성하는 경우도 꽤 있는가 봅니다. 온라인 사이트에서도 혼전 계약서에 대한 상담 및 관련 기사를 쉽게 찾을 수 있거든요.
하지만 혼전 계약서 작성에 따른 찬반 논란이 여전히 맞서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자신의 재산을 지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긴 하지만, 동시에 배우자에게 자신의 재산을 낱낱이 다 공개하고 혼전 계약서에 사인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부작용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도 하네요. 즉 거기에 사인을 하게 되면 이렇게 증명이 되는 셈이에요.
나는 절대로 네 돈을 보고 결혼하지 않는다~
(출처: 구글 이미지)
또한 "결혼은 영원히 너와 함께 할 것이다" 라는 마음으로 서로 결합하는 것인데, 이미 나중에 깨질 때를 염려하고 그런 혼전 계약서를 받아 놓는 행위와 "Romance is dead" 라는 현실이 참 씁쓸하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특히 이런 혼전 계약서는 여자들에게서 많이 나타난다고 하는데요, 아무래도 남자들보다는 여자들이 결혼에 대해 더 현실적이고 계산적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미 이혼 경험이 있는 부유한 여자들에게서 훨씬 더 많이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그런 여자들은 아예 자신의 자녀들에게도 혼전 계약서를 작성하라는 강요 혹은 요구를 하나 봅니다. 다만 관련 기사의 댓글에는 이에 반박이라도 하듯이 "결혼은 사랑보다는 현실이다, 남자들도 자신을 보호하려는 경향이 크게 나타나고 있다"고 하네요.
영국 가디언 기사는 이렇게 끝을 맺고 있네요.
만약 여자들이 처음부터 혼전 계약서를 언급하면,
이미 그녀는 사랑보다는 현실적인 면을 보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결혼은 더 이상 사랑만 가지고는 할 수 없다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인것 같습니다. 점점 경제 불황으로 인해 살기가 힘들어지다보니, 돈 없이 결혼을 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것이 사실이지요. 그렇다고 해도 너무 돈만 밝히는 계산적인 결혼은 절대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이 진리입니다. 어쩌면 한국도 머지않아 커플끼리 혼전 계약서를 작성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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