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영국품절남입니다.
제가 다니는 켄트 대학 정치학과에는 2주에 걸러 한 번씩, 외부 강사를 초청해서 교수 및 박사과정 학생들을 대상으로 특별 강의를 합니다. 약 30분 강의와 1시간의 질의 및 응답 시간이 있는데, 그 이후에는 바로 옆방에서 간단한 스낵과 맥주, 와인 및 주스와 같은 음료수가 제공되지요. 질의 응답시간에 기회를 얻지 못한 사람들은 보통 이 시간을 이용해 특별 강사와 대화를 나누곤 합니다. 또한 같은 학교에 있지만 시간이 안 맞아 못 만났던 사람들끼리 가벼운 잡담을 나누기도 합니다. 그 후에는 외부 강사, 학과 내 교수 및 박사과정 학생들은 같이 저녁을 먹으로 가지요.
제가 박사과정에 들어온 지 3년이 되었지만, 어제 처음으로 저녁 식사에 참가를 해 보았어요. 어제의 외부 강사는 저의 전공과 관련이 있기도 해서 저녁식사 시간을 통해 더 많은 대화를 나누고자 했던 것입니다. 총 7명이 저녁을 먹으로 시내에 있는 펍으로 향했습니다.
자리배치는 이렇게 되었지요.
식당에 도착해서도 일부러 그 교수님 옆에 앉았는데, 아뿔싸... 대각선 맞은 편에 뒤늦게 학과장님께서 오셔서 앉는 것입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테이블 화제는 그 분이 주도하시더군요. 말도 빨리 하는 울 학과장님의 대화에 끼기도 어려워서 자연스럽게 저는 옆 테이블의 대화에 끼게 되었죠.
왼쪽 테이블은 영국인 교수가 대화를 주도하고 있더군요. 이 교수는 30대 초반에 미혼이며, 패기만만하고 의욕적으로 일하는 영국인 교수입니다. 옷도 항상 정장 (행커치프까지) 을 깔끔하게 입고 다닌답니다. 많은 영국인 젊은 교수들이 일반적으로 캐쥬얼하게 입고 다니는 것을 감안하면 – 물론 학교, 학과 마다 다르기는 하겠지만요 – 그 교수는 조금 특별하다고도 할 수 있겠네요. 옥스퍼드 출신이라는 자부심도 없지 않아 있어 보입니다.
사진 속의 영국 배우인 에드 웨스트윅처럼 입고 다녀요. (출처: 구글 이미지)
이런 저런 잡담이 오가다가 "한국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나 들어 봤더니 자신의 핸드폰 (갤럭시 노트)을 꺼내면서 "현재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 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S전자가 스마트폰 시장에서 애플을 제쳤다면서, 그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칭찬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그 교수는 스스럼없이 자신은 맑시스트라고 말하기도하고, 미국 비판하는 것을 좋아하기도 합니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작년에 히트한 "강남 스타일" 로 넘어갔습니다.
제 앞에 있던 미국 친구 (박사과정생)가 싸이의 "반미 퍼포먼스" 에 대해서 얘기를 하자, 그 젊은 교수는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더 (강남스타일을) 좋아하는 것 아니냐"라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자신은 MIT 대학생들이 만든 강남스타일을 봤는데, 자신이 존경하는 노암 촘스키 교수까지 나온다면서 "역시 그래서 강남스타일이 좋아" 라는 말을 하더군요. 들을 때는 설마 했는데, 집에 와서 찾아 보니 정말 촘스키 교수가 나오더군요.
노암 촘스키 강남 스타일~ (출처: 아래 유튜브 동영상 캡쳐 - 3:20 확인 가능)
잠깐 노암 촘스키 교수를 잠깐 소개하자면, 원래 언어학자이긴 하지만, 활발한 사회참여와 제국주의 및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적 입장은 그를 더욱 유명하게 만들었지요. 아마 전세계 진보 지식인들의 든든한 후원자로 부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루 종일 영어만 듣고 쓰고 말하다 보니 피곤해 죽겠는데, 그 교수 말상대까지 하려니 힘들더군요.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그 젊은 교수는 자신을 공산주의자(맑시스트)라고 규정하면서도, 북한에 대해서는 굉장히 비판적이었어요. 자신이 신봉하는 공산주의 신념으로서는 절대로 현재의 북한을 지지할 수 없다고 하더군요. 어느 뉴스에서 봤다는데, 북한군이 음식물 섭취가 모자라 한국군보다 훨씬 키가 작다면서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 황당해하기도 했습니다. 다소 농담 섞인 말투로 이야기는 했습니다만, (자칭) 공산주의자의 입에서 북한을 비판하는 이야기를 들으니 더 흥미롭기도 했습니다.
다른 박사과정 학생들과도 예전에 이야기 했던 것인데, 그 젊은 교수의 공산주의 신봉은 일종의 패션 같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 한국의 강남 좌파라는 말이 있는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더 많은 화제가 오고 갔지만 그냥 유머로서 넘길 수 있는 얘기들이 많아서 이 정도로 줄이겠습니다. 비록 1시간 30분 남짓의 짧은 시간이긴 했지만, 한 젊은 공산주의자의 한국 휴대폰 및 강남 스타일의 칭찬과 북한에 대한 시각을 알 수 있어서 자칫 딱딱할 수도 있을 뻔한 저녁 식사 시간이 즐거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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