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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녀의 영국 귀양살이 seasno 1 (2010-2014)/실시간 영국 소식

대학 알바 풍토까지 바꾼 영국 높은 실업률

by 영국품절녀 2013. 7. 16.

 

안녕하세요? 영국품절남입니다.
한국은 장마와 찜통더위로 고생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사는 영국도 거의 7년 만에 꽤 더운 여름이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다행히 영국은 습도가 높지 않아 그늘에만 가도 조금 시원한 편이라, 한국에서 더위로 고생하실 분들을 생각하면 불평거리도 되지 않을 듯 합니다.

 

이번 여름 방학 동안 저희 부부는 학교에서 간단한 기숙사 청소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습니다. 품절녀님은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6시간을, 저는 논문 마무리 관계로 오후 1시까지만 일을 합니다. 사실 쉬는 시간도 충분하기 때문에 딱히 힘들지는 않습니다. 2년 전, 여름에도 했던 일이라 딱히 고생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한 달 정도 이 일을 하다 보니 2년 전과 두 가지 면에 다릅니다.

앞서 말씀 드렸듯이, 우선 올 여름은 날씨가 무척 덥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청소하기가 그 때에 비해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날씨야 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바로 "영국 대학생들의 아르바이트를 대하는 태도"입니다.

 

 

청소복으로 받은 오렌지색 T를 입고 청소를 합니다.

거창한 단어들이 나열 되어 있지요.

Passion, Professionalism, Pride

 

2년 전, 제가 속해 있던 팀은 영국인 할아버지가 이끌었습니다.
멤버는 영국인 학생이 딱 1명 있었고 나머지 8명은 모두 국적이 달랐습니다. 어느 날, 팀 리더에게 "왜 우리 팀에는 영국인이 없나요?" 라고 물어 본적이 있습니다.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영국 애들은 게으르고 성실하게 일도 잘 안 해.

그래서 난 항상 될 수 있는 대로 영국 학생들을 뽑지 않지.

 

그나마 한 명 있던 영국 학생도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일을 그만두었으며, 다른 그룹에 있던 영국 학생들을 봐도 그다지 열심히 하는 것 같지 않더군요.

 

품절녀 님이 청소한 기숙사 방

 

그런데 단지 2년 만에 다시 청소를 하면서 만난 영국 학생들은 제가 이전에 알던 영국 학생들과는 180도 달라서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물론 같은 사람이 아니라 단순 비교를 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대략적인 분위기는 비교할 수는 있지 않을까 합니다.)

 

이번 한 달 동안 제가 겪은 영국 학생들은 "무척 성실하고, 결근도 없으며, 요령도 피우지 않는다" 입니다. 특히 주말(토, 일)에도 특근을 자진해서 신청하는 모습도 인상 깊었습니다. 품절녀 님이 일하는 곳도 마찬가지라고 하더군요. 영국 대학생(재학 및 졸업 예정)들의 수가 절반이 넘으며, 그들은 일도 열심히 하고 주말까지도 일을 한다고 합니다. 2년 전에는 주로 주머니 사정이 팍팍한 아시아나 동유럽 출신 학생들이 자원했던 것과 비교하면 놀랄만한 일이지요.

더군다나 일이 조금이라도 일찍 끝나게 되면 수당을 채우지 못하기 때문에 "오랜만에 일찍 마쳐서 좋아" 가 아니라 "왜, 일을 더 주지 않는 거죠?" 라고 항의까지 하면서 일을 더 할 수 있는 곳으로 보내 달라고까지 하더군요.

 

품절녀 님이 청소한 기숙사 부엌

 

이와 같이 영국 대학생들의 분위기가 달라진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일단 영국의 경제사정 때문일 듯 합니다. 현재 영국의 청년 실업률이 20% 를 훌쩍 넘어섰다고 합니다. 대학 졸업 후에도 괜찮은 일자리를 잡기 어렵게 된 것이지요. 영국도 경기가 좋지 않을 때에는, 대학 졸업자들 중, 대학원으로 가는 학생이 꽤 있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영국 정부가 석사에 대한 장학금을 대대적으로 삭감해서 대학원 진학도 여의치 않다고 합니다. 이러다 보니 대학 시절부터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독립하는 영국 대학 (졸업)생들은 웨이터나 청소 등, 단순 일용직으로 내 몰리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source)

 

제가 일하는 청소도 여름이 지나면 학기 중에 일할 직원을 뽑는데, 현재 정직원으로 일하는 현재 제 팀 리더는 이에 문의하는 영국 대학 졸업생들이 예년에 비해 훨씬 많아졌다고 귀띔해 줍니다. 청소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올해 졸업생들은 계속 면접을 보러 다니기도 하는데요, 취업이 어렵다고 하면서 다소 경쟁률이 낮은 대형마트, 레스토랑 등 대학 졸업장이 굳이 없어도 되는 곳들에 지원서를 내기도 합니다.

 

이제 취업에 대한 초조감은 1학년 학생들에게도 예외는 아닙니다. 좋은 인턴 자리를 잡기 위해 이미 1학년 때부터 학점관리에 들어간 것 같습니다. 영국 대학에서는 1학년 성적은 합산이 되지 않고 단순히 참고용으로 인식되었지만, 이제는 보다 나은 인턴과 일자리를 위해 필수불가결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 같더군요. 확실히 예전에 비해 공부도 아르바이트도 열심인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대학 입학하자마자 취업 준비에 들어가 학점까지 관리하는 한국의 대학 1학년생들과 비슷해지는 것 같기도 하네요.


물론, 현재의 영국 상황을 한국과 단순 비교 하기에는 어려운 부분도 있습니다. 우선 영국 대학생들은 한국과 달리 보통 졸업 후에 본격적으로 일자리를 구하니까요. 그래도 제가 최근에 느낀 영국의 경기는 재작년과는 확연히 다른 것이 사실입니다. 저도 같이 청소하는 주제(?)에 영국 대학생들을 보면서 왠지 씁쓸하기는 했습니다. 한국이나 영국이나 갈수록 살기 힘들어지는 요즘 젊은이들의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기만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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