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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녀의 영국 귀양살이 seasno 1 (2010-2014)/실시간 영국 소식

영국 박사생 조언, 작문 교재는 사설이다

by 영국품절녀 2013. 5. 6.


안녕하세요? 영국품절남입니다.
영국은 요 며칠 날씨가 정말 좋았습니다. 특히 어제는 젊은이들이 근처 공원이나 잔디밭으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날도 따뜻해져서 그런지 아예 웃통을 벗고 있는 사람들도 꽤 되더군요.

 

오늘은 제가 요즘 논문을 작성하면서 느꼈던 점을 몇 가지 적어보려고 합니다.

논문의 정의는 "어떤 것에 관하여 체계적으로 자기 의견이나 주장을 적은 글" 이라고 사전에 나와 있습니다. 달리 말하면 글을 통해 어떤 주제에 대해 자신의 의견이나 주장을 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뭐 거창하게 말할 것도 없이, 논문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쓰기입니다.

 

(출처: Google Image)

 

남의 나라까지 와서 남의 나라 말로 글을 쓰려다 보니 참으로 쉽지가 않습니다. 영문 논문을 작성하면서 저 자신에게 던진 질문이 있습니다.

과연 나는 우리 말로 글을 잘 쓰는가?

 저 스스로도 딱히 자신은 없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의 국어선생님은 좋은 글을 쓰려면 훌륭한 사설을 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글 쓰기 자체보다는 논술 시험에만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크게 그 말이 크게 와 닿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쩌다 글을 써야만 하는 위치에 있다 보니 그 이유를 잘 알겠더군요. 우선 사설의 훌륭한 점 몇 가지를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째, 사설의 글은 짧고 명료합니다.

 사설을 보면 가장 쉽게 눈에 들어오는 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단문 위주의 글의 전개입니다. 사실 글을 쓰다 보면 "길고", "장중하며", "화려하게" 쓰고 싶어합니다. 옛 논문이나 일본어 전공서적을 보면 이런 만연체의 글들을 볼 수 있지요. 이러한 만연체 글들이 결코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이런 글을 잘 쓰려면 엄청난 내공이 있어야 합니다. 일단 주어와 서술어의 호응이 적절하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아울러 문장 곳곳에 적절한 수사들을 넣어 문장의 맛을 더해야 하지요. 주어와 서술어가 멀리 떨어져 있는 한국어에서 훌륭한 만연체의 글을 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에 비해 사설은 수식어를 최대한 자제하고 핵심 어휘들만 사용해서 작성된 글입니다. 즉 그 짧은 글 속에서 작성자의 어휘 수준과 논리력이 그대로 드러나게 됩니다. 그만큼 더 어려울 수도 있겠네요.

 

 

(출처: Google Image)

 

둘째, 사설은 접속사를 거의 사용하지 않습니다.

 예전에 출판과 관련된 일을 약간 한 적이 있습니다. 출판사 편집인들이 최고로 여기는 글들은 화려하고 멋진 문장으로 이루어진 글이 아니었습니다. 접속사 사용을 자제하고 문장의 힘만으로 글을 끌고 나가는 글을 좋은 글로 꼽았습니다. "그리고", "그러나", "그러므로" 와 같은 접속사가 글 속에서 필요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접속사는 작문에서 필요합니다. 대립되는 두 의견 혹은 사실을 비교할 때, 접속사만큼 유용하면서 의미를 선명하게 해주는 어휘도 없겠지요. 접속사는 독자로 하여금 글을 읽을 때 한 템포를 쉬어주게끔 하는 기능도 있습니다. 이렇게 훌륭한 접속사의 장점에도, 제가 사설과 같은 글쓰기을 추천하는 이유는 문장력을 향상시키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품절녀님의 블로거의 자리를 빌어 이렇게 재미없는 글을 쓰는 이유는 별 것 없습니다. 영어 작문을 잘하려면 궁극적으로 한국어 작문 실력 역시 뒷받침 되어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기 때문입니다. 요즘 영어학습의 열풍 속에서, 저 스스로도 한국어 작문을 조금 소홀히 해 왔던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해보게 됩니다. 가끔 N사 포탈사이트에 제 이름을 검색할 때가 있습니다. 전문 자료에 제가 쓴 글이 몇 개 뜨지요. 예전에는 볼 때마다 뿌듯했었는데, 이제는 다시 읽을 때마다 부끄럽기만 합니다. 저의 한국어 작문 실력이 시원치 않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

 

글쓰기에는 다양한 목적이 있으므로, 사설만이 반드시 훌륭한 교재가 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글쓰기의 기본기를 익힐 때에 신문의 사설만큼 훌륭한 작문교재가 – 한국어 및 영어 포함 – 없다는 것을 감히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또한 한국어 표현력이 좋거나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영어 작문력도 금방 쉽게 느는 것 같습니다. 글을 잘 쓰고 싶으시다면, 사설로 공부해 보심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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