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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녀의 영국 귀양살이 seasno 1 (2010-2014)

영국 학생들과 본 영화 속 일본 군국주의자

by 영국품절녀 2013. 2. 16.



안녕하세요? 영국품절남입니다.

영국은 날씨가 조금 풀리는 듯 하더니 다시 좀 춥네요. 모두 건강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기억나시는 분들도 있을 것 같지만, 제가 이번 학기에 학부생 과목인 일본 정치수업 중 일부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 과목은 세계 제2차 대전 시기부터 현재까지의 일본 정치와 사회를 배우는데, 금요일마다 관련 영화 혹은 다큐멘터리를 봅니다. 지난번에 포스팅 했던 "반딧불의 묘"가 이번 학기 첫 번째 영화였고, 그 이후로 "히로시마," "블랙레인" - 이마무라 쇼헤이의 작품으로 리들리 스콧의 동명 영화가 있지요- 등을 보았지요.

어제(금요일) 본 영화는 일본 소설가 미시마 유키오에 관한 영화입니다. 원제는 "Mishima – A Life in Four Chapters" 위의 제목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내용 자체가 유쾌한 것은 하나도 없어서 그런지 영화 보는 학생의 수는 갈수록 줄어듭니다. ㅎㅎ

 

                                                           (출처: 구글 이미지)

 

미시마 유키오를 제가 처음 접한 것은 대학생 때입니다. 서점에 갔다가 우연치 않게 일본 소설 단편선집이 있길래 집은 것이 그의 소설 단편 모음집이었습니다. 이때까지는 그가 누구인지는 전혀 몰랐었는데, 일본에 가서 그 곳 학생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니 굉장히 유명한 작가이더군요.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카와바타 야스나리가 자신의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을 접했을 때, 미시마 유키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고 하던데, 그 만큼 일본 문학계에 미친 영향력은 꽤 큰 것 같습니다. 다만 제 개인적으로는 이 인물에 대해서는 관심이 크진 않았습니다.

 

그런데 작년에 이어 일본정치 과목 일부를 담당하면서 이 영화를 보았고, 금년에 다시 이 영화를 읽게 되면서 이 인물과 그의 사상에 대해서 꽤 흥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일단 영화 얘기부터 간단하게 해보자면, 영화의 구성 자체는 꽤 훌륭합니다. 그의 인생의 여정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이끌어 나가면서, 그 중간에 그의 대표 소설 네 편의 스토리를 적절하게 배치하였습니다. 중간중간에 삽입되는 소설 속 주인공들의 대화를 통해 미시마의 작가로서의 사상 – 탐미주의라고 할 수 있을까요? – 과 극단적 군국주의 의식이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쉽게 말하면 스토리 속에 또 다른 스토리가 있기 때문에 굳이 이야기 하자면 액자식 구성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많지는 않으리라 생각하지만 관심 있으신 분들은 이 영화 추천합니다.

 

 

중간 중간에 조금 생소한 단어가 나오기는 하는데, 전체적으로 이해하는데 어렵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현재 꽤 유명한 일본 배우들의 젊은 시절을 볼 수 있기도 합니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미시마가 자신의 사병과 함께 육상자위대 총감실을 점거하고 자위관들 앞에서 천황제로의 복귀를 설파합니다. 즉, 자신이 주도하는 쿠테타에 자위대를 동원해 동조하라는 것인데, 그의 목소리가 잘 전달되지도 않았을 뿐더러 때마침 근처에 취재를 나왔던 방송국 헬리콥터의 소음으로 인해 자위관들은 미사미의 말을 전혀 알아 듣지 못했고 오히려 비난만 했지요. 뜻밖으로 호응이 없자 좌절한 미시마는 할복자살을 하게 되는데, 비로서 그가 그렇게나 추구하던 죽음을 맞이합니다. 영화 곳곳에 워낙 죽음과 고통에 대한 극단적인 장면이 많아서 그런지 영국 학생들은 그럴 때마다 눈을 가리거나 아예 얼굴을 돌리더군요. 물론 저도 결코 유쾌하지 않았습니다.

 

일본에서 군국주의가 부활하고 우경화되어 간다고 하는 요즘, 영화에서 묘사되는 그의 사상과 언행은 오늘날 현실과 묘하게 오버랩 되더군요. 아마 지금까지 살아 있었다면 현 도쿄도지사로서 우익적인 망언을 일삼는 이시하라 신타로를 넘어서는 일본 극우 보수의 아이콘이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혹은 카와바타 야스나리에 이은 제2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 – 실제로 2번이나 후보로 지명되었었다고도 합니다 - 가 되었을지도 모르지요. 아마 전자가 맞지 않을까 합니다.

 

지식인이자 문학가로서 자신의 바라던 국가를 구현하고자 현실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는 것 자체는 인정해 줄 수도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제가 이 영화를 두 번째 보는 내내 느낀 것은 그릇된 사상과 신념을 맹신한 한 문학 천재의 광기와 죽음이었습니다. 모 기업 회장이 그랬었죠. 한 명의 천재가 만 명을 먹어 살린다고요. 하지만 그 말에는 전제가 빠져 있는 것 같습니다. 바로 천재의 조건입니다. 삐뚤어진 천재는 만 명, 아니 그 이상을 죽일 수도 있기 때문이죠. 해악도 그런 해악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 문학 천재의 작품과 사상을 각각 별개로 받아들여야 할까요? 아니면 조금 더 극단적으로, 이 천재의 이른 죽음에 안도를 느껴야 할까요? 영국 학생들은 그의 작품과 죽음에서 무엇을 느꼈을까요? 늘 그렇듯이, 영화가 끝나면 그들은 침울한 얼굴로 강의실을 떠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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